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이정하의 <복사꽃>

복사골이선생 2018. 8. 21. 01:55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41)





복사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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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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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이 하도 많아 입 다물어버렸습니다. 눈꽃처럼

만발한 복사꽃은 오래 가지 않기에 아름다운 것

가세요, 그대. 떨어지는 꽃잎처럼 가볍게, 연습이듯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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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진 자리 열매가 맺히는 건

당신은 가도 마음은 남아 있다는

우리 사랑의 정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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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서 그대 모습이 사라지면

그때부터 나는 새로 시작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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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뜨거운 햇볕을 온전히 받아

내 스스로 온몸 달구는 이 다음 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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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꽃은 복숭아나무의 꽃을 이르는 말이다. 과일 나무의 꽃을 사과꽃, 배꽃, 자두꽃……이라 부르는데 왜 복숭아꽃은 복사꽃이라 부를까. 실은 애초에 중국으로부터 들어올 때 복사나무였으니 꽃은 당연히 복사꽃이었다. 다만 그 열매를 복사라 하지 않고 복숭아라 부르며 꽃을 한자어로 도화(稻花)라 했을 뿐이란다.


복사나무는 중국 황하 상류 고산지대가 원산지라 하는데 이 나무의 꽃인 복사꽃은 연분홍빛을 띠어, 보기에 참 아름답지만 개화 기간이 좀 짧은 것이 아쉽다. 흔히 복사꽃의 꽃말을 사랑의 노예, 희망, 용서 등이라 하는데 안견의 <몽유도원도>나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나타나듯이 이상향의 상징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그 열매인 복숭아는 신선들이 먹는다는 선과(仙果)로 여긴다는데 좋은 맛만이 아니라 뽀얀 솜털이 덮인, 젊은 여자들의 예쁜 얼굴이나 육감적인 엉덩이 자태에 비유되어 많이들 좋아한다.


이정하의 시 <복사꽃>은 제목이 복사꽃이지만 복사꽃이 피고 지고 열매를 맺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사랑을 노래한다. ‘할 말이 하도 많아 입 다물어버렸단다, 그것도 눈꽃처럼입을 닫았단다. 그런데 첫 행의 마지막 구절 눈꽃처럼은 첫 행을 도치법으로 수식하기도 하지만 그 다음 행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눈꽃처럼 / 만발한 복사꽃이 그것이다. 시행 배열을 통해 멋진 표현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런데 시 속에도 지적하고 있듯이 복사꽃은 오래 가지 않기에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니 시 속 화자는 이별하는 연인에게 가세요, 그대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것도 짧게 피다 떨어지는 꽃잎처럼 가볍게가라 한다. 나아가 연습이듯 가라고 한다. 짧은 사랑이었기에 얼른 잊으려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실은 그 다음 사랑이 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시를 연인들의 이별을 노래한 것으로 해석하다간 고개가 갸웃해진다.

그렇다고 이별을 하는데 미련이야 없겠는가. ‘꽃진 자리열매가 맺히는것은 떠날 사람은 가도 둘이 나눈 마음은 남아 있다는 것이요 그것이 그들의 사랑의 정표가 될 것이란다. 그러나 내 눈에서 그대 모습이 사라지면 / 그때부터 나는 새로 시작할 수 있을거란다. 무엇을, 진짜 사랑을. 바로 한낮의 뜨거운 햇볕을 온전히 받아 / 내 스스로 온몸 달구는 이 다음 사랑이다. 이 다음 사랑이라니? 맞다. 바로 복숭아’ - 복사꽃이 지고 난 후에 맺히는 열매이다.


그렇다면 이 시 속의 화자는 누구일까. 이별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복사나무 혹은 그 가지이다. 잠깐 피었다 지는 복사꽃에게 잘 가라고 하면서 복숭아가 맺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어쩌면 헤어지자는 연인을 요즘 쓰는 말로 쿨하게보낸다는 젊은 세태의 이별법인지는 모르나, 실은 꽃이 지고 열매를 맺는 과정을 복사나무 입장에서 노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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