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39)
아카시아꽃
— 최제형
유월에도
함박눈 내리는가.
까마득히 푸른 가지 끝까지
하얗게 쌓이는 구름 빛 축복.
달빛처럼 교교히 퍼지는 향기는
내 어린 시절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던
어머님 품 같은 고향 내음.
꽃눈이 온다.
겨울 봄 다 보내고
유월의 상흔 덮으려
하얀 아카시아 꽃
봄비 따라 내려 쌓인다.
우리가 흔히 아카시아라 부르는 ‘아까시나무’는 1900년 초에 연료림(땔감)으로 도입되어 황폐지 복구용 혹은 연료림으로 전국에 식재되었다고 한다. 왕성한 맹아력 때문에 수종을 갱신할 때 어려움이 있다고 하는데 잘 알고 있듯이 아카시아 나무 밑에는 풀조차 자라지 못한다. 그만큼 부근 영양분을 몽땅 흡수해버리기 때문이란다.
게다가 꽃은 나뭇가지가 휘어질 정도로 많이 피고 그 향기는 온갖 벌들을 불러 모은다. 더구나 가난한 시절, 아카시아꽃은 진한 향기와 함께 달달한 맛 덕에 어린아이들의 좋은 주전부리였다. 아카시아꿀 역시 우리들에게 익숙한 식품이다.
최제형의 시 <아카시아꽃>을 읽다 보면 꽃이 피는 계절의 아름다움과 함께 가난한 시절은 물론 한국전쟁이란 어려운 시절까지 추억하게 만든다. 시인은 ‘유월에도 / 함박눈 내리는가’란 물음으로 아카시아꽃을 유월에 내리는 ‘함박눈’으로 파악한다. 사실 그런 비유가 적절한 것이 그만큼 온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린 하얀 꽃이기 때문이다. 키가 큰 나무의 ‘까마득히 푸른 가지 끝까지 / 하얗게 쌓이는 구름 빛 축복’이기도 할 것이다.
‘달빛처럼 교교히 퍼지는’ 아카시아꽃 향기는 시인에게는 ‘어린 시절 /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던’ 꽃이다. 그 꽃향기는 ‘어머님 품 같은 고향 내음’일 것이다. 시인은 첫 연에 이어 연을 따로 하여 ‘꽃눈이 온다’고 단정한다. 하긴 하늘에 내리는 눈을 ‘떡가루’로 상상했던 우리들의 어린 시절이 아니던가.
이 아카시아꽃이 떨어지면 마치 꽃비가 내리듯 하얗게 쏟아진다. 시인은 이를 ‘겨울 봄 다 보내고 / 유월의 상흔 덮으려’는 것으로 파악한다. 전후세대, 어려운 시절을 지낸 시인의 연배로 보아 그런 짐작은 가능할 것이다. 그러니 ‘하얀 아카시아 꽃 / 봄비 따라 내려 쌓인다’는 마지막 두 행에서 아카시아꽃의 낙화를 대하는 시인의 씁쓸한 기분까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아카시아꽃을 보면 잎을 하나씩 들고 ‘가위바위보’로 한 잎씩 땄던 추억 그리고 어린 시절 따먹던 향긋한 맛만 기억나는데, 시인은 시대까지 읽어낸다. 그러니 시인이지 않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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