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윤제철의 <과꽃>

복사골이선생 2018. 8. 21. 01:48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37)





과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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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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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껏 시치미 떼고

초록빛 몸뚱어리로 살면서

언제 삼켜 두었는지

짙은 분홍빛 꽃잎을

여러 겹 겨워냈구나.

가슴을 열고

하늘 맑은 물에

묽게 녹아내는

가을 인사말.

어렸을 적 바라보던

부러운 옷 색깔을

들길 따라 입은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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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 / 꽃밭 가득 예쁘게 피었습니다 / 누나는 과꽃을 좋아했지요 / 꽃이 피면 꽃밭에서 아주 살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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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를 생각나게 해 주는 노래 <과꽃> 1절이다. 이렇게 동요로도 불리던 과꽃을 요즘은 만나기 힘들다. 가정집 화단이나 거리의 화분에는 형형색색의 외래 원예종 꽃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을 뿐, 은은한 색깔의 얌전한 과꽃은 어느덧 옛 꽃이 되고 말았다. 어쩌다 만난 과꽃을 젊은이들에게 보여주면 국화로 인식할 정도이다. 하긴 국화를 닮았다 하여 당국(혹은 당구화)’이라 불렀으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나, ‘과꽃이란 이름조차 점차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윤제철의 시 <과꽃>을 읽다보면 우리 주변에서 점차 사라지는 과꽃을 생각나게 하고 잠시 옛 추억에 잠기게 된다. 전체 12행이지만 내용상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앞부분은 과꽃이 피어나는 모습이다. 과꽃을 보려면 싹이 나고 잎이 나고 그리고 꽃봉오리가 올라올 때까지 봄에서 여름을 거쳐 가을날까지 지루하게 기다려야만 했다. 이를 시인은 여태껏 시치미 떼고 / 초록빛 몸뚱어리로 살면서라 한다. 이윽고 가을날, ‘언제 삼켜 두었는지 / 짙은 분홍빛 꽃잎을 / 여러 겹 겨워내는 것이 바로 과꽃이다.


가운데 부분은 과꽃의 의미이다. 바로 가슴을 열고 / 하늘 맑은 물에 / 묽게 녹아내는 / 가을 인사말이 바로 그것이다. 4행의 분홍색8행의 묽게를 연결하면 과꽃의 색상이 나온다. 맞다. 과꽃은 분홍, 보라 등 여러 색깔로 피지만 결코 원색이 아니다. 새빨간 장미나 샛노란 수선화와는 빛깔이 다르다. 여러 색깔이 합쳐진 것처럼 복합적인 아니 은은한 색상을 띠는 것이 바로 과꽃이다. 여기에 가을꽃이니 가을 인사말이라 했을 터이지만, 봄과 여름을 지나며 초록빛으로 잎이 무성했을, 기다림의 결과로 핀 꽃이기에 인사말이라 하지 않았을까.

마지막 부분에는 시인의 추억과 감탄이 나온다. ‘어렸을 적 바라보던꽃이다. 그것도 부러운 옷 색깔을 / 들길 따라 입은 꽃이다. 지금은 자주 볼 수 없는 꽃이기에 어쩌다 마주친 꽃에 대한 반가움이 있을 것이다. 시인의 추억 속에는 화단만이 아니라 들길에서도 만났던 과꽃이지만 오늘날 만나기 힘들어졌다. 그러니 시인의 어린 시절 추억과 함께 꽃에 대한 반가움이 저절로 우러나온 것이리라.

윤 시인은 내게 인생 선배이다. 그가 그러하듯 나 역시 어린 시절 보았던 과꽃을 요즘 자주 만나지 못한다. 자주 만나지 못하던 꽃을 보면 나 역시 반가울 것이다. 그러나 그 반가움에 나는 손전화 사진기를 들이대지만 시인은 이렇게 반가움을 시로 노래한다. 범인과 시인의 작지만 아주 커다란 차이일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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