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원영래의 <겨우살이>

복사골이선생 2018. 8. 21. 01:59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43)





겨우살이

 

- 원영래

 

하루살이에게 어찌 사느냐

묻지 마라 대답하는 순간조차

그에게는 천금이다

 

삶이 고단한 그대여 하루하루

겨우산다고 말하지 마라

나목 앙상한

참나무가지 끝에 매달려

혹독한 겨울밤 의연히

지새는 겨우살이를 보라

 

매운 겨울바람 속에서

황금빛 찬란한 열매를 잉태한

겨우살이는 결코 겨우산다고

말하지 않는다

 

칼바람 온몸으로 맞으면서도

치열한 꿈을 놓지 않는다

 

 

겨우살이는 주로 참나무, 물오리나무, 밤나무, 팽나무 등에 기생하는 반기생식물로 사계절 푸른 잎을 지닌 풀이다. 둥지같이 둥글게 자라 지름이 1m에 달하는 것도 있다. 과육이 잘 발달되어 산새들이 좋아하는 먹이가 되며 이 새들에 의해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옮겨져 퍼진다. 산의 나무에 해를 주지만 예로부터 약용으로 썼는데 근래 웰빙 붐을 타고 채취가 빈번해졌고 주로 줄기와 잎을 차로 끓여 마신다.


원영래의 시 <겨우살이>에는 크게 세 가지 특징이 보인다. 우선 하루살이겨우살이라는 언어유희이다. 시 속에서는 하루살이는 하루만 사는 것이고 겨우살이는 겨우 산다는 뜻으로 파악하고 있다. 하루살이에게 뭘 묻지 마라고 했다. 왜냐하면 하루밖에 살지 못하는 그에게는 대답하는 시간조차 천금이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무리 힘들더라도 겨우 산다고 말하지 마라고 한다. 왜냐하면 나목 앙상한 / 참나무가지 끝에 매달려 / 혹독한 겨울밤 의연히 / 지새는것이 겨우살이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시행의 배열이다. 첫 연부터 두드러진다. 1행의 어찌 사느냐2행에, 2행의 대답하는 순간조차3행에 걸쳐 있다. 2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1행의 하루하루2행에, 5행의 의연히6행에 걸쳐 있다. 1연의 경우 일상적인 배열이라면 하루살이에게 / 어찌 사느냐 묻지 마라 / 대답하는 순간조차 그에게는 천금이다가 될 것이지만, 시인은 자신만의 시행의 배열을 통해 그 의미 즉 주제를 확장한다.

마지막으로 겨우살이를 통한 치열한 삶의 자세를 설파하는 것이다. ‘하루살이’에게는 묻는 말에 대답하는 시간조차 아깝듯이, 겨우살이 앞에서 결코 겨우 산다고 말하지 마라고 한다. 왜냐하면 나목 앙상한 / 참나무가지 끝에 매달려 / 혹독한 겨울밤 의연히 / 지새는겨우살이는 매운 겨울바람 속에서 / 황금빛 찬란한 열매를 잉태하지만 결코 겨우 산다고 /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아가 칼바람 온몸으로 맞으면서도 / 치열한 꿈을 놓지 않는겨우살이이다.


삶이 고단하다 하여 하루하루 그냥 겨우 산다고 우리는 쉽게 말한다. 그러나 비록 다른 나무에 기생하고 있을망정 겨울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고 눈과 칼바람 속에서도 꿋꿋하게 꿈을 놓지 않는 겨우살이야말로 얼마나 치열하게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온 몸으로 보여주는 것이리라. 맞다. 하늘 높은 곳 나무 가지 끝에서 겨울 칼바람을 그대로 맞으면서도 푸르름을 잃지 않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겨우살이 - 그 삶의 자세에 고개가 숙여지지 않는가.


사족 하나 - 시 속에서 겨우살이겨우 산다로 파악하고 있지만 사실 겨우살이란 이름은 겨울에도 산다고 하여 붙은 이름으로 겨울살이에서 이 탈락한 것이다. 하긴 시인이 이를 모를 리 없다. ‘하루살이와 맞추기 위한 언어유희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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