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33)
개망초
— 김다연
보기 흔한 잡풀이라고
함부로 뽑지 마라
그의 가슴에도
기다림의 씨앗이 묻혀있다
오만을 버리고
질기게 피워 올린
한 톨의 소금꽃
그도 귀한 손님이다.
<개망초>를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다. 꽃 이름 앞에 <개>가 붙으면 정말 개(犬)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대개 ‘가짜’, ‘사이비’, ‘비슷한’ 등의 의미가 붙은 명칭이 된단다. 따라서 <개망초>란 이름의 의미는 <망초>와 비슷한, <망초>의 가짜, <망초>의 사이비 꽃이란 뜻이 된다. 볼수록 아름답기만 한데 이름이 그러하니 꽃에게 조금 미안한 생각까지 든다.
사실 <망초>는 우리 꽃이 아니다. 구한말 서구로부터 유리그릇이 수입되면서 그릇이 깨지지 않게 사이사이에 풀묶음을 넣었는데 그 풀들과 함께 들어온 외래종으로 지금은 우리나라 전역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이 꽃이 들어와 퍼지면서 나라가 망했다고 하여 ‘망초(亡草 - 나라를 망하게 한 풀)’라 불렀다고 한다.
그 후에 들어온 것이 바로 <개망초>인데, 미국이 원산인 이 꽃 역시 유리그릇을 수입하며 함께 들어왔단다. 본디 <넓은잎잔풀>이란 이름이 있었는데 누군가가 <망초하고 비슷한 놈이네~~!>라 한 말이 굳어져 <개망초>라 부르기 시작했고, 지금은 식물도감에도 버젓이 <개망초>라 올라 있다. 즉 들어온 <망초>와 그 모양이 비슷하다 하여 <망초> 앞에 <개>를 붙여 <개망초>가 되었다는 것이다.
꽃의 입장에서야 대한제국이 망한 것과 필연적 관계가 없음에도 <망초>란 이름이 붙은 것도 억울한데 그것도 ‘가짜’, ‘사이비’ <망초>가 되었으니, <망초>보다 더 예쁜 꽃이 <망초>보다 못한 것으로 바뀌고 만 것이다. 정말이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참 예쁘다. 그런데 그 아름다움과 상관없이 이름은 ‘개’가 붙은 ‘망초’인 것이다.
김다연 시인도 <개망초>란 이름의 유래를 알았던 모양이다. 게다가 우리나라 전역 어느 곳에 가도 흔히 볼 수 있는 꽃이란 사실도 알 것이다. 그러니 ‘보기 흔한 잡풀이라고 / 함부로 뽑지 마라’고 하지 않았겠는가. 아무리 보기 흔한, 들판에 널린 꽃이라 해도 생명인 이상 ‘그의 가슴에도 / 기다림의 씨앗이 묻혀있’을 것이다. 유식하게 ‘Erigeron’라 부르건 혹은 ‘넓은잎잔풀’이라 부르건 아니면 개망초라 부르건 꽃은 ‘오만을 버리고 / 질기게 피워 올’린다. 하얀 꽃잎과 노란 중심부가 어우러져 마치 달걀을 보는 것과 같다 하여 누군가는 ‘달걀꽃’, ‘계란꽃’이라 부른다지만 시인의 눈에는 아름다운 ‘한 톨의 소금꽃’이다.
<개망초>도 학명이 있고, 처음 우리나라에서 불렀던 이름이 있다. 그럼에도 지금은 <망초>와 비슷한 <개망초>로 불린다. 게다가 왕성한 번식력에 우리 토양과 맞았는지 흔한 꽃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아무리 흔하다고 하더라도 한 생명이요 그 생명에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시인은 <개망초>의 개념을 단정하여 말한다. ‘그도 귀한 손님이다’고. 흔한 꽃 한 송이이지만 시인은 그 존재와 생명을 인정하고 있다. 자연, 식물 그리고 꽃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하지 못할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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