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조동례의 <갈대>

복사골이선생 2018. 8. 21. 13:16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69)







갈대

 

조동례

 

저 홀로 쓰러지고

저 홀로 일어서는 갈대에게

흔들리고 있다고 말하지 말라

꺾이고 싶어도 꺾일 수 없는

유순한 천성이 서러워

온몸으로

걷잡을 수 없는 바람을

끊임없이 베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별하는 일이

베어도 도로 붙는 물 같은 일이지만

자칫 제 몸에 상처 날 일이지만

갈대가

이쪽저쪽으로 기울어보는 것은

제 나름대로

살 길을 모색하는 몸부림인 것이다

 

 

갈대는 억새, 국화, 단풍과 함께 가을 이미지로 많이들 알고 있는 들풀이다. 가을을 맞아 곳곳에서 갈대축제를 여는데, 축제에 가 보면 어떤 곳에서는 갈대보다 억새가 더 눈에 많이 뜨이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 갈대와 억새를 구분하지 못한다.

갈대는 억새와 달리 주로 습지에서 자란다. 그렇기에 해변이나 저수지 혹은 강가에 서식한다. 키가 억새보다 조금 크고 잎과 줄기가 강하다. 물을 많이 머금기에 종종 수질개선에도 한몫을 한다. 요즘이야 공원 조성을 잘 해놓아 그렇지만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도심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풀이었다. 이 갈대는 불쏘시개는 물론 왕골을 대신하여 각종 공예품의 재료가 되기도 한다. 그만큼 줄기가 단단하다. 그래서 촌에서는 억새보다 갈대를 더 유용한 풀로 간주한다.

그런데 갈대는 바람을 따라 이리 휘고 저리 휘는 모습에서 흔들린다혹은 변한다는 이미지로 우리에게 각인되어 있다.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 같이 항상 변하는 여자의 마음……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트’ 3막에서 만토바 공작이 부르는 노래 <여자의 마음(La donna mobile)>의 가사는 그렇게 시작한다. 그만큼 갈대는 변심 혹은 흔들림 표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조동례의 시 <갈대>에서는 이러한 편견에 대한 반박을 하며 그 진실을 설파한다. 시 속 화자는 갈대가 저 홀로 쓰러지고 / 저 홀로 일어서는존재로 본다. 그렇기에 결코 흔들리고 있다고 말하지 말라고 한다. 갈대는 그 천성이 유순하여 꺾이고 싶어도 꺾일 수 없는존재이다. 그러니 온몸으로 / 걷잡을 수 없는 바람을 / 끊임없이 베어내고 있는 것이다고 한다.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바람에 맞서 그 바람을 베어내는 행위를 인간들이 흔들린다고 파악하고 있으니 그것은 오해라는 말이다.

우리는 이별했다가 다시 만나기도 한다. 그러나 자칫 제 몸에 상처 날 일이지만바람에 맞서 갈대가 이쪽저쪽으로 기울어보는 것은 / 제 나름대로 / 살 길을 모색하는 몸부림인 것이다고 한다. 결코 꺾이지 않는 부드러운 성질, 그렇기에 거센 바람에 맞서 나름대로 살 길을 찾아 이리저리 몸을 기울여 보는 것은 갈대 나름의 삶의 방식이다. 그것을 왜 흔들린다거나 변심이란 말로 곡해하느냐는 항변이다.

많은 사람들이 흔들림 혹은 변심으로 파악한 갈대의 움직임을 시인은 삶의 몸부림으로 파악한다. 시인이 갈대와 대화를 주고받았을까. 아닐 것이다. 오히려 시인은 갈대의 속성을 지극히 세밀하게 파악하고 갈대의 천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 온갖 세파에 시달리는 우리네 삶의 방식까지 제시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치더라도 결코 꺾이거나 부러지지 말자. 이리저리 몸을 기울여 그 일을 베어버리고 다시 새롭게 몸을 세우자뭐 그런 말이 아니겠는가.

갈대의 흔들림은 변심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삶의 몸부림이다 - 사물이나 관념에 대한 새로운 해석 - 그것이 바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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