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유강희의 <억새꽃>

복사골이선생 2018. 8. 21. 13:18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70)





억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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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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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꽃이 오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명절날 선물 꾸러미 하나 들고 큰고모 집을 찾듯

해진 고무신 끌고 저물녘 억새꽃에게로 간다

맨땅이 아직 그대로 드러난 논과 밭 사이

경운기도 지나가고 염소도 지나가고 개도 지나갔을

어느 해 질 무렵엔 가난한 여자가 보퉁이를 들고

가다 앉아 나물을 캐고 가다 앉아 한숨을 지었을

지금은 사라진 큰길 옆 주막 빈지문 같은 그 길을

익숙한 노래 한 소절 맹감나무 붉은 눈물도 없이

억새꽃, 그 하염없는 행렬(行列)을 보러 간다

아주 멀리 가지는 않고 내 슬픔이 따라올 수 있는

꼭 그만큼의 거리에 마을을 이루고 사는

억새꽃도 알고 보면 더 멀리 떠나고 싶은 것이다

제 속에서 뽑아올린 그 서러운 흰 뭉치만 아니라면

나도 이 저녁 여기까진 오지 않았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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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는 습지에 자라는 갈대와 달리, 개천가나 강가에 없는 것은 아니지만, 주로 산자락과 들판에 많이 자란다. 그래서 가을에 억새 축제를 하는 곳에 가 보면 주로 산자락이다. 제주의 경우 ○○오름즉 산등성이에 주로 억새밭이 있다. 가을바람에 살랑살랑대며 흔들리는 억새꽃은 그야말로 하얀 파도와 같다. 억새밭 사잇길을 걸으며 사랑을 속삭이는 일은 상상만 해도 참 흐뭇하다. 아쉬운 것은 예전에는 산자락에 핀 억새들을 가을이면 베어다 불쏘시개로 썼지만 부엌이 개량된 지금 억새는 농촌에서도 그냥 잡풀 취급을 받는다. 소 여물로도 쓰이지 못한다.

유강희의 시 <억새꽃>에서는 억새꽃의 이런 아름다움보다는 시 속 화자가 느끼는 슬픔으로 환치되어 있다. 화자의 독백을 따라가 보자. ‘억새꽃이 오라고 하지도 않았는데화자는 해진 고무신 끌고 저물녘 억새꽃에게로 간단다. 즉 화자가 명절날 선물 꾸러미 하나 들고 큰고모 집을 찾듯그냥 훌쩍 가는 것이다. 어쩌면 문득 마음이 그렇게 움직였는지도 모른다. 뭔가 사연이 있음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화자가 억새꽃에게로 가는 길은 어떤 길일까. 바로 맨땅이 아직 그대로 드러난 논과 밭 사이에 있는 길인데 그 길 위로 경운기도 지나가고 염소도 지나가고 개도 지나갔을길이다. 경운기, 염소, 개 등은 일상적인 이미지이다. 그런데 어느 해 질 무렵엔 가난한 여자가 보퉁이를 들고 / 가다 앉아 나물을 캐고 가다 앉아 한숨을 지었을길이며 세월이 흘러 지금은 사라진 큰길 옆 주막 빈지문 같은 그 길이다. 여기서 가난한 여자’, ‘보퉁이’, ‘가다 앉아 나물을 캐고’, ‘가다 앉아 한숨을 지었다는 것은 아주 특별한 경우의 길이다. 더구나 해질 무렵이란다. 가출한 것일까 아니면 농촌을 떠나는 것일까. 어떻게 해석을 해도 화자와의 이별을 뜻한다. 그러니 참 애틋하다.

그런데 억새꽃을 만나러 가는 화자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바로 익숙한 노래 한 소절 맹감나무 붉은 눈물도 없다고 했으니 그렇다. 노래를 부를 만한 흥겨운 걸음도 아니고 그렇다고 맹감나무 빨간 열매처럼 붉은 눈물을 흘려야 할 슬픔도 아니란다. 어쩌면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는 뜻이리라. 그런 마음으로 억새꽃, 그 하염없는 행렬(行列)을 보러 간다는 것이다. 그럼 화자가 생각하는 억새꽃은 어떤 것일까. 억새꽃은 아주 멀리 가지는 않고 내 슬픔이 따라올 수 있는 / 꼭 그만큼의 거리에 마을을 이루고산단다. ? ‘억새꽃도 알고 보면 더 멀리 떠나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억새꽃은 화자에게 무엇인가. 바로 제 속에서 뽑아올린 그 서러운 흰 뭉치이다. 억새가 가슴속 자신의 서러움을 하얗게 뽑아 올린 것이 억새꽃이란 이야기다. 그렇기에 화자는 이 저녁에 억새꽃을 보러 오는 것이다. 이쯤 오면 의문이 풀린다. 화자는 마을을 떠난 어느 여자를 알고 있다. 어쩌면 사랑을 했는지도 모른다. 이별을 할 때에는 얼마나 슬펐을까. 그러나 세월이 흐른 지금 어쩌면 덤덤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을 억새밭을 찾아가 억새밭을 행렬(行列)로 느끼면서는 떠난 여자, 그리운 여자를 떠올리고 바로 그 때 문득 화자의 서러운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이 억새는 제 마음속 서러움을 하얗게 피어 올리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그 꽃들은 아주 멀리 가지는 않고 내 슬픔이 따라올 수 있는 / 꼭 그만큼의 거리에 피어 있다. 그 하얀 꽃이 바로 화자의 서러움인 것이다. 여기서 독자는 가슴이 먹먹해 질 것이다.


하얀 억새꽃 - 내 눈에는 아름답기만 한데 그것을 어찌 서러움으로 환치시켰을까. 하긴 그러니 시인이지 않는가. 그런데 궁금해진다. 혹시 시인의 경험담일까. 그렇다면 해질 무렵 보퉁이를 들고 마을을 떠난 그 여자는 지금쯤 어느 억새밭을 거닐고 있을까. 시를 읽고 이런 생각이나 하는 것을 보면 나는 참 범인(凡人) 아니 어쩌면 속물인지도 모르겠다. 사족 같은 말이지만 시인 유강희는 이름 끝 자가 희 자()이지만 남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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