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성선경의 <연밭에서>

복사골이선생 2018. 8. 21. 13:21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72)







연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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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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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젖은 발목으로

얼마나 먼 길을 돌아왔는지

진흙의 깊은 수렁 어떻게 건너왔는지

뿌리 깊은 마음의 상처들이 얼마나

큰 구멍으로 자릴 잡았는지

아는 이 누구 하나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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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다 눈물 걷으며

하늘을 향해

쭉 고개를 든

불 밝힌 연등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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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을 흔히 불교의 꽃이라 하는데 실은 불교 전파 이전부터 동양에서는 진흙 속에서 피는 깨끗한 꽃의 모습을 통해 속세에 물들지 않는 군자의 꽃으로 표현하였고, 종자가 많이 달려 다산의 징표로 삼았다고 한다. 불교가 전래되며 극락세계를 신성한 연꽃이 자라는 연못이라고 생각하여 사찰 경내에 연못을 만들기 시작하였다는데 근래에는 공원이나 습지 등에 연꽃을 많이 심어 관상용으로 재배하기도 한다.

성선경의 시 <연밭에서>는 연꽃이 피기까지의 과정이 연꽃의 입장에서 잘 표현하고 있다. 연꽃을 피고 좋아라 하는 사람 어느 누구도 꽃이 피기까지 연꽃이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에는 관심이 없다. 전혀 알아주지 않는다. ‘젖은 발목으로 / 얼마나 먼 길을 돌아왔, ‘진흙의 깊은 수렁 어떻게 건너왔는지는 물론 뿌리 깊은 마음의 상처들이 얼마나 / 큰 구멍으로 자릴 잡았는지아는 이 누구 하나 없다.’ 그래서 하도 섭섭하여 울기도 한다. 어쩌면 젖은 발목’, ‘깊은 수렁’, ‘마음의 상처등은 삶의 과정이 그만큼 힘들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리라. 게다가, 실제로는 꽃턱의 통형 모양의 구멍에서 따로 난 암술이지만, 험난한 삶이 큰 구멍 - 상처로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연꽃은 울다 눈물 걷으며 / 하늘을 향해 / 쭉 고개를든다. 나 여기 있다고, 이렇게 살아냈다고, 이겨냈다고. 그리고 바로 불 밝힌 연등 하나가 된다. 연꽃이 아니라 연등이다. 연꽃은 그냥 꽃이지만 연등은 보다 큰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삶의 온갖 시련을 극복하고 종국에는 이겨내어 꽃을 피우는 연꽃 - 그 꽃은 결코 단순한 연꽃이 아니라 삼라만상에 광명을 전하는 연등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구태여 불교의 교리를 들이댈 필요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고난을 극복한 삶은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기 때문이다.


언뜻 읽으면 연꽃이 투정을 부리고 있는 모양이지만, ‘울다 눈물 걷으며 / 하늘을 향해고개를 쭉 내미는 모습에서 고난을 이겨낸 연꽃의 삶까지 아름다워 보인다. 그런데 제목이 연밭에서이다. 즉 시에서 하고자 하는 말은 연꽃의 아름다움이나 고난을 이겨낸 연꽃 예찬이 아니라 연밭에서 화자가, 실은 시인이 느끼는 연꽃의 삶이다. 단순히 연꽃의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것이 아니라 연밭에서 깨닫는 삶의 아름다움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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