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박형준의 <싸리꽃>

복사골이선생 2018. 8. 21. 13:23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73)







싸리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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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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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리꽃 주고 싶어

향기가 진해서

너 발자국 밑 쫓아다니면서라도

주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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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조합 둑방 풀이 유난히 푸르다

사람들이 오누이를 에워싸고 있고

무릎 꿇고 고개 숙인 소녀의 모습

수리조합 물살에 떠내려간다

물에서 건져낸 오빠의 얼굴

풀물 들어서, 소녀는 얼굴이 발그레하다

동그랗게 에워싸고 있던 사람들과

입맞춤과

지는 해와

풀물 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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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조합 둑방

방아깨비 발에 하늘 들려올라간다

태풍 지나간 후에 더 진해진

싸리꽃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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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리는 콩과의 잎이 지는 넓은 잎 작은키 나무로 줄기가 무더기로 올라와 키 3m 정도로 매우 곧게 자란다. 줄기가 자라며 비스듬히 뻗어 위쪽이 넓게 둥그스름해진다. 그래서 잎을 털어내고 줄기만으로 빗자루를 만들어 쓸어낸다고 싸리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줄기가 매우 곧은데 꽃대가 길게 나와 7~8월에 가지 끝이나 잎 달린 자리에 붉은 연자주색으로 꽃이 핀다.

박형준의 시 <싸리꽃>은 소재가 되는 싸리꽃 혹은 싸리의 생태와는 무관하다. 그렇기에 일반적인 독자들이 느끼는 싸리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그도 그럴 것이 시 속 싸리꽃은 시인의 특수한 경험에서 각인된 꽃이다. ‘그때 싸리꽃이 피어 있었어……란 뜻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2연을 먼저 읽어야 한다. 어쩌면 시인이 직접 목격한 사건일 것이다. 어느 때인지는 모르나 수리조합 둑방 풀이 유난히 푸르던 날, 오누이가 물놀이를 하다가 오빠가 물에 빠져 죽었던 모양이다. 누이동생을 구하려다 오빠가 죽은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오누이를 에워싸고 있고 / 무릎 꿇고 고개 숙인 소녀의 모습을 보았던 모양이다. ‘물에서 건져낸 오빠의 얼굴은 시체에서 느낄 수 있는 풀물 들어있는 모습이다. 오빠의 얼굴을 본 소녀는 얼굴이 발그레하다오빠의 죽음도 죽음이지만 동그랗게 에워싸고 있던 사람들이 창피했고, 불쌍하다며 사람들이 다가와 해 주는 입맞춤그리고 마침 지는 해그리고 오빠의 얼굴이 풀물 들어있는 모습에 소녀는 얼굴이 붉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2연의 사건은 시인의 특수한 경험이 된다. 그리고 그 경험의 인자는 아주 깊게 각인이 되었던 모양이다. 훗날 연인을 만나 사랑을 하고 끝내는 이별을 하게 된다. 바로 1연의 내용이다. 이때 문득 헤어지는 연인에게 싸리꽃 주고 싶은 것이다. ‘향기가 진해서이다. 그 향기를 전하고 싶은 것이다. 실제 싸리꽃의 향기는 별로 진하지 않다. 그러나 시 속 화자는 싸리꽃 향기를 진하게 느끼고 있다. 바로 시인의 특수한 경험이다. 그러니 너 발자국 밑 쫓아다니면서라도 / 주고 싶단다. 비록 헤어지지만 끝까지 따라가 싸리꽃, 그 진한 향기를 전하고픈 화자이다.


물에 빠져 죽은 소녀의 오빠 그리고 연인과 헤어짐 - 이 두 가지 이별의 경험이 합쳐지는 것이 3연이다. 연인과 헤어지는 허전함에 문득 과거에 보았던 사건이 떠오른다. ‘수리조합 둑방 / 방아깨비 발에 하늘 들려올라간다고 한다. 오빠의 죽음에 대한 소녀의 감정이다. 오빠가 죽었으니 어쩌면 저 때문에 죽었으니 하늘이 뒤집어졌을 것이다. 지금 연인과 헤어진 화자도 마찬가지 느낌일 것이다. 마침 때는 7월이나 8, ‘태풍 지나간 후에 더 진해진 / 싸리꽃 냄새가 나는 것처럼 느꼈던 것이다.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경험을 이어주는 것이 바로 싸리꽃이고, 시 속 화자만이 느낀 진한 향기가 연결고리가 된다. 그러니 시를 읽으며 싸리꽃의 생태나 그 향기를 기억하여 시를 이해하려고 하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시 속에 나타난 시인의 특수한 경험을 찾는 것이요 그 다음 시 속에 표현된 사건의 인과관계를 따져 보는 일이다. 이렇게 정리를 하면 이 시는 쉽게 이해된다. 결국 이별의 아픔이다.


시 속 화자 - 실은 시인에게 강열한 인상으로 남았을 수리조합 둑방에서의 익사사건 그리고 연인과의 이별이 싸리꽃과 그 향기로 연결되며, 소녀의 오빠와의 이별 그리고 시 속 화자의 연인과의 이별의 아픔을 아주 진하게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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