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송찬호의 <냉이꽃>

복사골이선생 2018. 8. 21. 13:26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75)







냉이꽃

 

송찬호

 

박카스 빈 병은 냉이꽃을 사랑하였다

신다가 버려진 슬리퍼 한 짝도 냉이꽃을 사랑하였다

금연으로 버림받은 담배 파이프도 그 낭만적 사랑을 냉이꽃 앞에 고백하였다

회색 늑대는 냉이꽃이 좋아 개종을 하였다 그래도 이루어질 수 없는 긴 울음을 남기고 삼나무 숲으로 되돌아갔다

 

나는 냉이꽃이 내게 사 오라고 한 빗과 손거울을 아직 품에 간직하고 있다

자연에서 떠나온 날짜를 세어본다

나는 아직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달래, 냉이, 씀바귀 나물 캐오자, 종다리도 높이 떠 노래 부르네……어린이들이 부르는 동요가 아니더라도 봄나물에는 냉이가 빠지지 않는다. 냉이는 한해살이 풀이지만 때로는 해넘이살이로 겨울을 이겨내는가 하면, 여름을 중심으로 살기도 하며, 밭두렁, 논두렁, 들녘 초지, 농촌 길가의 야지 등 전국에 분포한다. 흔히 사람을 따라 다니는 풀이라 하여 농부의 장화 밑이나 경운기 바퀴 홈에 붙은 진흙 속에 열매가 붙어 여기저기로 산포하니 어쩌면 농부와 함께 사는 셈이라 할 수 있다. 하긴 요즘에는 농촌만이 아니라 도시의 공원이나 풀밭에도 많이 자란다.

그런데 춘삼월에 냉이는 잘 알면서 4, 5월이 지나면 금방 잊혀진다. 그래서 냉이는 많이 기억을 해도 냉이꽃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봄나물로 먹던 냉이를 철이 지나면 그만큼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냉이꽃의 입장에서는 꽃다운 시절이 없다. 냉이는 반기지만 냉이가 꽃을 피울 때쯤이면 모두들 외면한다. 농촌은 물론이요 도심 공원에서도 꽃을 피운 냉이는 한낱 잡초가 되어 뽑혀나가기 일쑤이다. 그럼에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농촌과 도시 구분 않고 한줌 흙만 있으면 뿌리를 내리는 풀이다. 그 생명력 하나는 가히 놀라울 정도이다.

송찬호의 시 <냉이꽃>에서는 냉이의 이런 생명력에 빗대어 자신의 삶을 그려낸다. 두 연으로 구성된 이 시에서 1연에서는 냉이꽃이 얼마나 많이 피어나는지를 보여준다. ‘박카스 빈 병’, ‘신다가 버려진 슬리퍼 한 짝’, ‘금연으로 버림받은 담배 파이프는 물건으로서의 역할을 다한, 즉 수명을 다한 폐기물이다. 버려진 그것들 옆에서도 냉이는 자라고 꽃을 피운다. 버려진 것들 아니 죽은 것들 옆에 냉이는 피어난다. 어디 그뿐인가. ‘회색 늑대로 상징되는 산짐승들과도 냉이는 잘 지낸다. 다만 그 동물은 아직 죽은 것이 아니기에 다시 숲으로 갔을 뿐이다. 이처럼 냉이는 우리 주변에 지천으로 깔려 있다.

2연에서는 시인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자연에서 떠나온 날짜를 세어보는 시인 - 송 시인이 돼지띠이니 내년이면 이제 환갑의 나이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아직 죽을 때가 안되었으니 그렇다. 그러니 죽을 때 무덤 속에 넣어준다는 손거울이나 빗을 아직 품에 간직하고 있는 것이리라. 이런 말을 통해 시인은 훗날 죽게 되면 결국 자연으로, 즉 냉이꽃 곁으로 간다고 말한다.


어쩌면 냉이꽃의 삶과 우리네 인간의 삶은 통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 줌 흙만 있으면 어디든 뿌리를 내리는 냉이나, 함께 누울 공간만 있으면 사랑하고 애 낳고 가정을 이뤄 살아나가는 인간의 삶은 어떻게든 살아내려는 생명력에는 닮은 점이 많을 것이다. 물론 냉이의 생명력에야 견줄 수 있겠는가. 그러니 시인은, 아직은 아니지만, 손거울과 빗을 들고 냉이꽃 곁으로 돌아갈 날을 생각한다.

지천으로 피어 있는 냉이꽃을 보고 꽃이 아니라 자신의 죽음까지도 평안하게 맞아줄 친구로 생각하는 시인 - 그런 인생관이 참 부럽다. 환갑 진갑 다 훌쩍 넘겼으면서 나는 언제쯤 그런 인생관을 갖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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