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성배순의 <메꽃>

복사골이선생 2018. 8. 21. 13:24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74)







메꽃

 

성배순

 

, 속절없이 보내고

한여름, 한낮에서야 연분홍 치마 입는다

젊은 것들 킥킥대거나 말거나 립스틱 짙게 바르고

탄력 늘어진 허리 지팡이에 기대어 외출한다

고자화라 불리는, 열매도 맺지 못하는

늙은 메꽃,

태양이 뜨거운 한여름

지금이 봄이다

당신이 지금 웃거나 말거나

 

 

메꽃을 보고 나팔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둘 다 메꽃과에 속하는데 대낮에 꽃이 피어 있는 것을 봤다면 그것은 메꽃이다. 왜냐하면 나팔꽃은 한낮에 입을 다물고 있지만 메꽃은 활짝 피어 있기 때문이다. 메꽃은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덩굴성 다년생 초본으로 음지를 제외한 어느 환경에서도 잘 자란다. 6월에서 8월에 걸쳐 여름 한낮에 피는 꽃은 엷은 홍색으로 나팔꽃과 같은 깔때기 모양을 하고 있는데 열매는 둥글지만 일반적으로 꽃이 핀 후 열매를 잘 맺지 않는다.

성배순의 시 <메꽃>은 메꽃의 이런 특성을 잘 나타내면서도 이를 노년의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 속절없이 보내고 / 한여름, 한낮에서야 연분홍 치마 입는단다. 맞다. 메꽃은 봄꽃이 아니라 여름꽃이다. ‘연분홍 치마’ - 바로 메꽃이 핀 모습인데 나팔꽃과 달리 한낮에 활짝 피어 있다. ‘젊은 것들킥킥대거나 말거나라 했는데 시인은 메꽃을 젊은이와 상대적 개념의 늙은이의 꽃으로 간주한다. 그러니 젊은 것들이 노망이 났다고 하건 말건 립스틱 짙게 바르고활짝 꽃을 피운다.

탄력 늘어진 허리이기에 지팡이에 기대어 외출한다는 표현이 참 재미있다. 메꽃이 피어 있는 모습을 어찌 이리 잘 표현했을까. 그렇다. 나팔꽃과 견주어 보면 메꽃은 꽃잎의 탄력이 좀 떨어진다. 시인은 그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늙은이, 탄력 늘어진 허리라 표현했다. 더구나 고자화라 불리는, 열매도 맺지 못하는 / 늙은 메꽃이란다. 생식능력이 떨어진 늙은이를 열매를 잘 맺지 않는 메꽃의 특성에 연결시켜 메꽃의 다른 이름 고자화를 언급한다.

그런 늙은이 꽃으로서의 메꽃에게는 태양이 뜨거운 한여름 / 지금이 봄일 수밖에 없다. 흔히 봄이 오면 산에 들에 꽃이 핀다고 말하는데, 봄에는 피지 않고 여름에 피니 메꽃에게는 여름이 봄이 된다. ‘당신이 지금 웃거나 말거나오직 메꽃의 입장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이 시에서 시창작 초보자들이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쉼표의 쓰임이다. ‘, 속절없이 보내고의 쉼표는 봄을 제시하면서 봄을 속절없이 보냈다는 아쉬움이 담겨 있다. ‘한여름, 한낮에서야에서 쉼표는 특별하다기보다는 한여름의 한낮이 아니라 한여름에서야그리고 한낮에서야이렇게 두 번 강조하는 것이 된다. ‘고자화라 불리는, 열매도 맺지 못하는의 쉼표는 일반적인 쉼표의 쓰임이지만 6행의 늙은 메꽃, 에 나오는 쉼표는 시인만의 독특한 기법이다. 우선 열매도 맺지 못하는 / 늙은 메꽃을 제시해 놓는다. 그런 다음 늙은 메꽃은이란 주격조사를 붙여 진술하는데 이 두 가지의 기능을 한 번에 표현한 것이다. 시에 쓰이는 쉼표 - 그것 하나에도 다 의미가 있다.

이 시를 읽고는 메꽃을 다시 봤다. 아니 시 내용을 생각하며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어쩌면 표현이 이리 재미있을꼬. 100세 시대 - 환갑 진갑이 넘어도 청춘이라고 하지 않는가. 70은 넘어야 중년 소리를 듣는다는 말을 생각하며 시 속에 나타난 메꽃의 허세 아닌 허세를 생각했고 그만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성 시인의 표현이 재미있어서이다.

메꽃을 그렇게나 많이 봤으면서 나는 왜 메꽃을 늙은 메꽃으로 생각하지 못했을까. 성 시인의 시를 읽고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맞아, 늙은 메꽃이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젊은 것들 킥킥대거나 말거나짙은 화장을 하고 멋을 내며 외출하는 중년을 넘어선 아름다운 아낙의 당당함이 시 속에 그대로 보인다. 100세 시대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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