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김영재의 <모과>

복사골이선생 2018. 8. 21. 13:20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71)







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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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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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택배로 보낸

잘 생긴 모과 네 알

한 알이 익기까지

십년이 걸렸다

사십 년 지난 햇살이 모여

향을 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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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과나무는 장미목 배나무과의 낙엽교목으로 이 나무의 열매를 모과라 하는데 나무에 열리는 참외란 뜻으로 모과(木瓜) 혹은 목과(木果)라 부른다. 모과는 신맛이 강하고 단단하며 향기가 강한 열매로 과육을 꿀에 재워 정과를 만들어 먹기도 하고, 과실주 또는 차로 끓여 먹기도 한다. 그런데 흔히 과일전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고 말한다. 모과가 과일은 과일인데 날로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맛이 텁텁해서 다른 과일처럼 날 것으로는 먹기가 어렵다. 그런데 그 향은 기가 막히게 좋다.

김영재의 시조 <모과>를 읽다보면 한 알의 모과가 그 향기를 품기까지 얼마나 긴 시간이 걸렸는지를 알 수 있다. 시조의 내용에 무슨 설명이 필요하랴. 친구가 모과 네 알을 택배로 보내줬는데, 모과 씨앗이 싹이 트고 묘목이 자라 다시 접목하여 크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그렇게 십 년은 자란 나무에 열린 모과라야 제대로 향을 낼 수 있는 과일이 된단다.

그러니 한 알의 모과가 우리 손에 들어오기까지 십년이 걸린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네 알이면…… 맞다. 당연히 그것도 십년이다. 그러나 시조 속 화자는 각각 십 년이 걸린 것으로 계산하여 사십 년이라 한다. 사십 년 동안 그냥 시간만 흐른 것이 아니다. 바로 사십년 지난 햇살이 모여향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십년 동안의 햇살이 익어 내뿜는 향기 - 그것이 모과향이란 화자의 풀이이다.


근래 짧은시란 이름으로 아주 단순한 시들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어떤 경우 촌철살인이라 할 시인의 날카로운 시선과 표현에 무릎을 치기도 하지만, 그보다 훨씬 전부터 우리에게는 김영재의 <모과>와 같은 현대시조가 있었다. 흔히 한물 간 갈래가 아니냐고들 하는데, 시조 -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아주 단순한 시조 같지만 그 안에 모과향이 풍기는 것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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