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김수우의 <수련이 지는 법>

복사골이선생 2018. 8. 21. 13:39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82)





수련 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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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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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찻집 주인이 바뀌었더군 꽃핀다고 들러도 싱거운 눈웃음, 꽃진다고 들러도 맹물 손인사, 잊힐 뻔한 안부마다 한 톨 답례 고맙더니 그 씨앗 받아 여기저기 나누었더니 어느 결에 헤어지고 만 게야. 마음 비운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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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 지는 법을 들었네 몇날 철없이 꽃비 뿌리거나 제 열정에 겨워 몸던지는 게 꽃지는 방식이거늘 수련은 잠잠히 물 속으로 돌아가지 소금쟁이가 딛은 고요를 돌아보는 어느 결에 송이째 물에 잠긴다네, 마음 비운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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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사람 내게 수련처럼 졌으니 나도 그에게 한 꽃자리일까 고운 사람 누구에겐가 수련으로 피어날 테니 물속 줄기, 먼 산 하나 풀어내리라 물그림자 흔들리는 그, 어느 결에 내 옷자락도 젖을 테지, , 마음 비운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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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들른 거리에 종종 들르던 가게가 사라지고 새로운 빌딩이 자리한 것을 볼 때 무언가 섭섭함을 느낄 때가 있다. 그 가게와 특별한 인연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저 몇 번 들러 익숙한 가게이고 익숙한 사람들일 뿐임에도 그들이 사라졌음에 섭섭한 것이다. 모두가 다 그런 마음은 아니겠지만, 김수우의 시 <수련이 지는 법>을 읽다 보면 사라져버린 옛것에 대한 추억이 불쑥 솟는다.

수련이 지는 법이라니, 꽃이 지는 방식이 다른 꽃에 비해 다른 모양이라 생각할 것이다. 네이버 백과사전에 따르면 수면 위로 잎이 솟고 꽃을 피우는 연과 달리 수련은 잎이 모두 수면에 펼쳐진 뜬 잎의 부수식물(浮水植物)이라서, 수면 위로 잎이 높이 솟는 경우가 없이 꽃도 대부분 수면 높이에서 피고, 발수성이 없어서 잎의 표면에 물이 묻는다고 한다.

흔히 수련을 물 위에 피는 연꽃으로 생각하여 水蓮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실은 수련과 연꽃은 다른 식물이다. 수련의 가 아니라 잠잘 이다. 즉 물 위에 핀 연꽃()이 아니라 잠자는 연꽃이라는 뜻이다. 해가 지면 어김없이 꽃을 닫아버리는 모습에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데, 특히 수련은 꽃이 질 때 꽃잎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물속의 꽃대도 함께 시들어 꽃대가 스러지며 물 위의 꽃이 통째로 물에 잠겨버린다.


시를 보자. 세 개의 연은 각기 다른 이야기를 전한다. 첫 연에서는 주인이 바뀐 단골찻집이 등장한다. 종종 들러 주인과 눈인사도 하고 안부 묻고 답하며 지내다 그 찻집 꽃의 씨앗을 얻어와 여기저기 나누었는데 그만 오랜만에 가보니 찻집이 없어지고 말았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니 어느 결에 헤어지고 만 게야. 마음 비운 사이라고 한다. ‘마음 비운 사이란 찻집 주인과 이해득실을 따지는 관계가 아니었다는 것, 그렇기에 오다가다 눈인사 정도 하는 사이였기에 오랜만에 들러 없어진 것을 알게 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둘째 연에서는 수련이 지는 방식을 말해준다. ‘수련은 잠잠히 물속으로 돌아가지’, ‘어느 결에 송이째 물에 잠긴다네라 한다. 수련이란 꽃이 통째로 물속에 잠기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여기에도 마음 비운 사이가 나온다. 바로 소금쟁이가 딛은 고요를 돌아보는동안 꽃이 물속에 잠기고 말았다는 것인데, 잠깐 한눈을 판 사이 정도일 것이나 이 역시 특별한 관심 없이 바라만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셋째 연은 조금 다른다. ‘고운 사람 내게 수련처럼 졌다고 한다. 그러니 나도 그에게 한 꽃자리일까 고운 사람으로 누구에겐가 수련으로 피어날 테라고 한다. 그리하여 물속 줄기, 먼 산 하나 풀어낼 것이란다. 게다가 물그림자 흔들리는 그에 대한 기억이 있기에 어느 결에 내 옷자락도 젖을것이란다. 바로 , 마음 비운 사이에 그렇단다.


여기서 3인칭 대명사 로 앞에 제시한 고운 사람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지시대명사 마음 비운 사이를 강조하는 의미가 된다. 화자에게 고운 사람이 가버린 것처럼 화자 역시 누군가에게 고운 사람으로 피어날 것이며 그러는 사이에 그에 대한 기억에 옷자락을 적실 것이란 말 - 바로 추억이요 어쩌면 잔잔한 사랑이다.

첫 연에서 일상적인 이별을 이야기했다면 셋째 연은 특별한 이별이다. 두 이별의 공통점은 둘째 연에서 제시한 수련이 지는 것처럼 부지불식간에 찾아왔다는 것이다. 바로 마음 비운 사이이다. 그러니 시의 제목은 꽃송이 채로 물속에 빠져버리는 - ‘수련이 지는 법이지만 이 시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마음 비운 사이이다. 바로 마음을 비우고 있는 사이에 온갖 이별이 일어나고 인간으로서는 불가항력적인 그 이별에 옷자락이 젖는다는 말이다.


꽃이 지는 모습을 통해 이별을 노래한 시들이 많다. 그런데 그 이별도 다양한 모습일 터. 김 시인은 특별히 수련 꽃이 지는 방식을 통해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이별을 아주 담담하게, 아무 일도 아니란 듯이 이야기한다. 어쩌면 시 속 화자는, 아니 시인은 그 이별에 피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른다. 다만 지나고 보니 마음 비운 사이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잔잔하게 말을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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