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최승호의 <해바라기>

복사골이선생 2018. 8. 21. 13:43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85)







해바라기

 

최승호

 

빛의 자식인 양 보라는 듯이

원색의 꽃잎들을 펼치는

해바라기는

太陽神을 섬기는 인디언

추장의 머리 같다

 

자기를 섬기든 말든 개의치 않고

太陽神이 비틀어놓는

늙은 머리들

 

그래도 오로지

생명의 빛깔이 원색인 곳을 향해

해바라기는 고개를

든다

 

 

중앙아메리카가 원산이라 알려진 해바라기는 초롱꽃목 국화과의 한해살이풀인데 아무데서나 잘 자라지만, 특히 양지바른 곳에서 잘 자란다. 흔히 향일화(向日花) 혹은 조일화(朝日花)라 부르는데 해바라기란 이름은 중국 이름인 향일규(向日葵)를 번역한 것으로, 이 중국 이름은 해바라기가 해를 따라 도는 것으로 오인한 데서 붙여진 것이란다. 즉 해바라기는 꽃이 피면 비가 오거나 흐린 날에는 고개를 숙이지만 해가 떠서 질 때까지 해만 바라보며 따라간다고 여기는데, 실은 꼭 그런 것이 아니란다. 혹자는 꽃 모양이 태양을 닮았다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도 한다.

최승호의 시 <해바라기>에도 해바라기는 해를 바라보는 것으로 그려진다. 시 속에서 해바라기는 흔히 태양의 후예라는 인디언 추장의 머리 장식과 같은 꽃으로 그려진다. 태양신을 따라 돌아야 하니 고개가 돌아가고 결과적으로 목이 비틀어진다. 이를 태양신이 그렇게 비틀어 놓은 것으로 파악한다. 그럼에도 해바라기는 오직 태양을 향해 고개를 든다는 것이다.

어쩌면 일편단심을 말하는 것 같지만, 실은 그런 마음을 넘어 빛의 자식’, ‘원색의 꽃잎’, ‘태양신’, ‘인디언 추장의 머리’, ‘생명의 빛깔’, ‘고개를 / 든다로 이어지며 해바라기의 특성을 시인 나름의 독특한 언어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한자로 표기한 太陽神은 그만큼 신비감까지 더해준다.

시인의 말에 따르면, 해바라기는 태양신을 섬기는 인디언 추장의 머리 같다고 했지만, 실은 인디언 추장의 머리가 바로 해바라기로서 태양신을 섬기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라 한다. 그러니 자신이 섬기는 신이 머리를 비틀어 방향을 바꾸어 놓아도 그것이 신의 뜻이라며 다시 고개를 드는 것이다. 시 속에 전개되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마치 신화의 세계 속에 신과 그 신을 따르는 무사의 이야기를 듣는 듯하다.

단순히 해를 따라 도는 것으로 여겼던 여름 꽃 해바라기가 신화 속 太陽神을 호위하는 무사의 모습으로 다가오는 느낌 - 바로 시인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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