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이용헌의 <나팔꽃>

복사골이선생 2018. 8. 21. 13:45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86)







나팔꽃

 

이용헌

 

나팔꽃 줄기를 따라 내려가면

거기,

아무도 몰래 지어놓은

지하방송국이 있다.

 

세상 밖 전하고픈 깜깜한 소리들을

향기와 빛깔로 바꾸어 송출하는

벙어리지하방송국이 있다.

 

 

나팔꽃은 메꽃과 나팔꽃속의 한해살이 덩굴성 초본으로 원산지는 아시아이고 길가나 빈터에 서식하며 주로 관상용으로 심는다. 최근 많이 보이는 미국나팔꽃이나 둥근잎나팔꽃은 열대 아메리카가 원산이다. 흔히 메꽃과 혼동을 하기 쉬운데, 우선 잎 모양이 다르고 한낮에 피어 있다면 그것은 메꽃이다. 나팔꽃은 해가 중천에 뜬 한낮에는 입을 다물어버리기 때문이다.

나팔꽃이란 명칭은 만주지역의 한자명 나팔화(癩叭花)’에서 온 것이라 한다. 만주지역의 우리나라 사람들이 꽃 모양이 나팔처럼 생겼다 하여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7~8월에 푸른색을 띤 자주색, 흰색, 붉은색 등 여러 가지 색의 꽃을 피운다. 애기나팔꽃, 미국나팔꽃, 둥근잎나팔꽃, 별나팔꽃…… 등 그 종류가 다양하다.


이용헌의 시 <나팔꽃>에는 덩굴 식물인 나팔꽃의 덩굴과 꽃 모양을 방송국 케이블과 스피커로 환치시켜 놓는다. 하긴 왼쪽으로 감고 올라가는 나팔꽃 덩굴을 보면 전기선 혹은 방송용 케이블로 상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팔꽃 자체는 커다란 스피커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시인은 단순히 케이블이나 스피커에 그치지 않는다.

나팔꽃 줄기를 따라 내려가면 / 거기,’ ‘지하방송국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무도 몰래 지어놓은것이란다. 왜 비밀스런 지하방송국을 생각했을까. 이래저래 언론 탄압의 말이 나오고 사전검열이란 말이 횡행하던 시절…… 그래, 아무도 모르게 지어 놓은 지하방송국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는 세상 밖 전하고픈 깜깜한 소리들을전하는데 온갖 부정적인 소식들을 평화, 사랑, 자유 등 아름다운 향기와 빛깔로 바꾸어 송출한다. 그곳에 바로 벙어리지하방송국이 있다.’는 것이다.


나팔꽃 덩굴과 꽃 모양을 방송 케이블과 스피커로 생각한 것을 넘어 케이블이 연결된 지하에 깜깜한 소리들을’ ‘향기와 빛깔로 바꾸어 송출하는 벙어리지하방송국이 있다.’는 상상 - 상상만으로도 자유롭지 않은가. 그래, 깜깜한 소리만 들리는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럴 때에 자유와 평화 그리고 사랑을 전해주는 방송국이 있다는 상상 - 그 상상이 참 아름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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