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박수서의 <감나무>

복사골이선생 2018. 8. 21. 14:22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92)







감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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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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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 익지 않았는데 감잎은 익어버렸다

다행이다

나는 아직 덜 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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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곁에서 어떻게 익어갈지 감나무에게 묻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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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이 익는 과정을 보면 참 묘하다. 하긴 자연의 변화는 모든 것이 오묘하지만, 감은 다른 열매와는 조금 다르다. 사과, , 복숭아 등과 달리 감나무에는 잎이 먼저 돋는다. 잎이 어느 정도 크면 가지 끝에 꽃이 피는데 숫꽃은 수정이 끝나면 꽃이 통째로 떨어져버린다. 이렇게 떨어진 꽃을 실에 꿰어 목걸이처럼 걸고 놀기도 한다. 암꽃은 당연히 열매를 맺는데 이것이 감이다. 가을로 들어서며 감이 노릇노릇 익어갈 무렵, 잎은 노랗게 물이 든다. 그리고 감이 익으면 잎은 먼저 떨어진다. 잎이 다 떨어지고 서리가 내려도 감은 그대로 달려 있다. 빨갛게 익은 채로.

박수서의 시 <감나무>는 감나무의 이러한 생태를 소재로 삶의 완성을 이야기한다. ‘감은 익지 않았는데 감잎은 익어버렸다고 한다. 그런데 다행이다고 한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 덜 익었기 때문이란다. 여기서 화자는 자신을 감과 동일시한다. 잎이 아니라 열매인 감이다. 잎은 익어, 실은 노랗게 물들어 떨어질 것이지만, 자신은 감이니 계속 나무에 매달려 더 익어갈 것이다. 그러니 다행이라는 것이다.

그리고는 세상 곁에서 어떻게 익어갈지 감나무에게 묻는 날이다고 한다. ‘어떻게 익어갈지는 인격의 완성을 의미할 수도 있고, 삶의 완성 혹은 인생의 성공을 의미할 수도 있다. 어떻게 보든 아직 익지 않았다는 것이고, 어떻게 익는 것이, 아니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길인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누가 감히 자신은 다 익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아마 죽을 때까지 익는 것이 인간이 아닐까. 그러니 시인은 노랗게 물이 들어 떨어지는 감나무 잎이 아니라, 잎이 떨어진 후에도 노랗게, 바알갛게 나중에는 나무에 매달린 채 빨갛게 익어가는 감을 바로 삶을 완성하는 모습으로 보는 것이다. , 자신의 삶에 너저분하게 붙어 있는 잎과 같이 잡스러운 것들 다 떨쳐버리고, 열매 자체만, 감 자체만 빨갛게 익어가는 모습에서, 시인은 삶의 완성을 보고 있는 것이리라.

시인의 자세를 어떻게 익어갈지 감나무에게 묻는 겸손으로 보아도 되겠지만, 삶의 완성에 대하여 이렇게 깊게 고민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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