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김명기의 <쑥갓꽃>

복사골이선생 2018. 8. 21. 14:25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93)







쑥갓꽃

 

김명기

 

해 걸음 느린 저녁

누군가 화단처럼 만든 텃밭에 노란 꽃 피었다

눈 익은 푸성귀에 저렇게 예쁜 꽃이라니

꽃피우기 전 다 잘라먹어

언제 저것의 꽃을 본 적 있어야지

텃밭 주인 맘이 좋거나

혹은 게으르거나 어쨌든 다행이다 싶어

밭가를 맴도는데

붉게 퍼져가는 저녁 안으로

느실느실 돌아오는 사람들

흔한 저 푸성귀 닮았다, 텃밭 같은 세상

제가 꽃인 줄도 모르고 피어 잘라 먹히는 사람들

근근한 생을 기워주는 일터가 날마다 잘라먹고

그 생의 7할은 자식이 잘라먹고

잘라먹은 자식은 망할 놈의 사교육이 다시 잘라먹고

나는 당신들을 당신들은 나를 잘라먹고

그런 우리 생의 대부분은 협소증을 동반한

기관지 천식 같은 자본들이 씨렁씨렁 잘라먹고

그래서 여태 푸른 대궁인 사람들 돌아오는

어스름한 저녁 길, 어떻게 살아남아 꽃피웠냐고

바람을 쥐고 싸락싸락 흔들어대는 꽃들에게

오래오래 견디는 법을 물어본다

 

 

쑥갓은 농부들이 어린잎들이 따가면 다시 어린잎을 키워낸다. 농부가 그 잎을 다시 따가면 또 키워낸다. 그리하여 길게 자란 줄기 끝에 꽃망울을 맺는다. 그때쯤 농부는 어린잎을 따지 않는다. 그리고 쑥갓은 꽃을 피운다.

흔히 쑥갓의 꽃을 본 적이 없다고들 한다. 아니 걔네들도 꽃을 피우냐고 묻는다. 실은 모든 식물은 꽃이 있다. 다만 우리들이 관심을 두지 않을 뿐이다. 왜냐하면 쑥갓은 꽃을 보기 위한 식물이 아니라 잎을 먹기 위한 채소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잎을 먹는 채소 - 배추, 상추, 시금치, , 부추, 쑥갓 등은 꽃을 피우면 그 잎을 먹지 못한다. 농부의 말에 따르면 꽃을 피우려 한창 독이 올랐기 때문에 그만큼 맛이 쓰단다.

김명기의 시 <쑥갓꽃>은 바로 이러한 쑥갓꽃을 보며 그 생태와 관련지어 인생을 논한다. 시인도 쑥갓꽃을 의아하게 바라봤다. ‘누군가 화단처럼 만든 텃밭에’ ‘눈 익은 푸성귀쑥갓에 저렇게 예쁜 꽃이라니하고 감탄을 했다. 왜 그랬을까. 시인 역시 쑥갓이 꽃피우기 전 다 잘라먹어 / 언제 저것의 꽃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시인은 쑥갓꽃을 보며 텃밭 주인 맘이 좋거나 / 혹은 게으르거나생각하면서도 그 덕에 쑥갓꽃을 만났으니 어쨌든 다행이다 싶어한다.


여기서 시인은 쑥갓꽃이 꽃을 피운 모습, 그리고 잎을 따 먹느라 꽃을 생각지 못한 것에 바탕을 두고 우리네 삶을 돌아본다. ‘붉게 퍼져가는 저녁 안으로 / 느실느실 돌아오는 사람들 / 흔한 저 푸성귀 닮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제가 꽃인 줄도 모르고 피어 잘라 먹히는 사람들이고 근근한 생을 기워주는 일터가 날마다 잘라먹고’, ‘그 생의 7할은 자식이 잘라먹고’, ‘잘라먹은 자식은 망할 놈의 사교육이 다시 잘라먹고’, ‘기관지 천식 같은 자본들이 씨렁씨렁 잘라먹는 것을 토로한다. 요즘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여러 현안들을 예로 들며, 결국 우리들 모두는 꽃을 피우기 전에 키워내는 어린잎마다 농부가 다 따버리는 쑥갓같은 인생이란 주장이다.

이쯤에서 시인은 다시 생각해 본다. 그렇게 잎들을 다 따 버렸는데, 아직 잘라 먹힐 것이 남은 여태 푸른 대궁인 사람들 돌아오는 / 어스름한 저녁 길, 어떻게 살아남아 꽃피웠냐고 묻는다. ‘바람을 쥐고 싸락싸락 흔들어대는 꽃들에게 / 오래오래 견디는 법을 물어본다는 것이다. 시인이 쑥갓꽃이 오래오래 견디는 법을 정말 몰랐을까. 아닐 것이다. 그저 꽃을 피우기 위해 잎을 따면 다시 피우고 또 따면 또 피우고…… 끝내는 꽃봉오리를 맺어 잎이 쓰니 사람들이 더 이상 따지 못하게 하고는 그때에서야 꽃을 활짝 피운 것이다.


텃밭에 핀 쑥갓꽃을 보며 인생을 논하는, 삶의 열정을 일러주는 시인 - 그의 통찰력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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