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김진경의 <목련>

복사골이선생 2018. 8. 21. 14:27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94)







목련

 

김진경

 

모래 구릉처럼 메마르고 묵묵한

줄기의 어디쯤에서

아무래도 지금쯤 전쟁이 한창인 모양이다.

남부여대(男負女戴)

살아남아야 한다는 목숨의 강렬함이

새 새끼 같은 자식들을 거느리고

남루를 끌며

메마른 가지에서 가지로

또 메마른 가지에서 가지로

없는 길을 찾아 오르다

마침내 국경을 넘는다.

국경을 넘다가

더 이상 발 디딜 틈 없는 허공에서

지금 막 날아오르려는

새의 자세로

하얗게 일어서고 있는 것이다.

 

 

중동 지역의 내전으로 유럽 쪽에 많은 난민들이 유입되고 있다. 국내에 있으면 죽임을 당할 위험이 있기에 식솔을 이끌고 외국으로 도피하는 난민들. 그 때문에 우리나라 제주도에도 예멘의 난민들이 많이 들어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일제 강점기 동양척식의 농촌 수탈에 견디지 못하고 얼마나 많은 우리 농민들이 만주로 이주했던가. 그 역시 난민이었다.

흔히 목련은 복수초, 매화, 산수유 등과 함께 봄의 전령사로 불린다. 희디 흰 색 때문에 순백의 이미지로 맑고 깨끗함을 표상하는 목련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꽃이다. 그런데 김진경의 시 <목련>에서는 그 꽃을 난민으로 보고 있다. 기발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목련은 잎이 나기 전에 꽃이 먼저 핀다. 그러니 목련 나무의 줄기는 꽃이 피기 전에는 모래 구릉처럼 메마르고 묵묵하다. 시인은 그 줄기의 어디쯤에서 / 아무래도 지금쯤 전쟁이 한창인 모양이라고 인식한다. 전쟁이 나면 피난민이 생기고 피난민은 남부여대(男負女戴)’ - 남편은 등에 지고 아내는 머리에 이고 피난을 간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목숨의 강렬함이 / 새 새끼 같은 자식들을 거느리고떠나는 것이다. ‘남루를 끌며 / 메마른 가지에서 가지로 / 없는 길을 찾아 오른다.


그렇게 길을 떠나 마침내 국경을 넘는다.’ 그러나 국경에는 검문소가 있다. 그곳을 통과하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러니 국경을 넘다가수많은 피난민들 틈에서 더 이상 발 디딜 틈 없는 허공에서 / 지금 막 날아오르려는 / 새의 자세로 / 하얗게 일어서고 있는 것이다.’ 국경에 도착한 난민이 새의 자세로 날아오르려 하얗게 일어서는 모습 - 그것이 바로 피어나는 목련꽃이라는 시인의 판단이다.

난을 피해 집을 떠나 국경에 다다라 결국 투신하는 난민들 - 그들이 순백의 아름다운 꽃 목련으로 환치되어 있다. 죄 없는 난민들, 순백의 목련 - 그러니 기발한 발상이라 하지 않겠는가. 하긴 목련은 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꽃잎을 뚝뚝 떨어뜨린다. 어쩌면 시인은 꽃이 활짝 핀 목련이 아니라, 막 꽃잎이 떨어지는 목련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난민을 목련으로 환치시킨 시인의 상상력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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