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오세영의 <양귀비꽃>

복사골이선생 2018. 8. 21. 14:28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95)







양귀비꽃

 

오세영

 

다가서면 관능이고

물러서면 슬픔이다.

아름다움은 적당한 거리에만 있는 것.

너무 가까워도 너무 멀어도

안 된다.

다가서면 눈멀고

물러서면 어두운 사랑처럼

활활

타오르는 꽃.

아름다움은

관능과 슬픔이 태워 올리는

빛이다.

 

 

양귀비는 양귀비과에 속하는 1~2년생 풀로, 꽃은 5~6월에 흰색 · 자주색 · 붉은색 등 여러 가지 색으로 피며 열매는 둥그런 삭과로 익고 삭과 꼭대기에는 우산처럼 생긴 암술머리가 남아 있다. 덜 익은 열매의 흠집에서 나온 즙액 말린 것을 아편이라 하는데, 최면 효과가 있어 예로부터 진통제 · 진정제 · 지사제 등으로 써왔지만, 이를 담배와 함께 피면 마취 상태에 빠지거나 몽롱한 상태가 되며 습관성이 되기 쉽고, 중독현상이 나타나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이에 많은 나라에서 양귀비 재배를 금지하거나 국가에서 조절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마약법을 근거로 양귀비 재배를 허가 · 조절하고 있다.

오세영의 시 <양귀비꽃>은 양귀비꽃의 아름다움에 대한 경계를 말하고 있다. 시인의 판단에 따르면 양귀비꽃은 다가서면 관능이고 / 물러서면 슬픔이다고 한다. 꽃의 아름다움에 다가서면 당 현종의 비 양귀비를 생각나게 하는 관능이 되어 버리고, 거리를 두고 물러서면 그 아름다움을 못잊는 슬픔이 될 것이다. 그러니 아름다움은 적당한 거리에만 있는 것이 시인의 판단이다.


따라서 양귀비꽃을 감상하려면 너무 가까워도 너무 멀어도 / 안 된다고 한다. 왜냐하면 다가서면 눈멀고 / 물러서면 어두운 사랑처럼 / 활활 / 타오르는 꽃이기 때문이란다. 여기서 독자들은 눈치를 챈다. 시 속 양귀비꽃에는 꽃으로서의 양귀비꽃과 미모를 자랑하던 여인으로서의 양귀비가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꽃으로 해석을 하건 미모의 여인으로 이해를 하건 아름다움에는 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데에는 다름이 없으리라.

그렇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꽃을 바라볼 때, 아니 미모의 양귀비를 바라볼 때, 아름다움은 / 관능과 슬픔이 태워 올리는 / 이 되는 것이다. 적당한 거리일 때에 관능과 슬픔이 합쳐져 빛을 내며 타오르는 진정한 아름다움이 된다는 것이 아닐까.

양귀비 재배 금지가 있기 전, 어린 눈에도 양귀비꽃은 참 아름다웠다. 이런 꽃도 있구나 싶었다. 요즘이야 꽃양귀비가 있어 양귀비꽃의 아름다움을 간접적으로나마 만끽할 수 있지만, 꽃이건 미모의 여인이건,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끼려면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시인의 말 - 백 번 맞는 말이리라.

이 시를 읽다보면 이시영의 시 <적당한 거리>가 생각난다. http://lby56.blog.me/220853152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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