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하린의 <맨드라미>

복사골이선생 2018. 8. 21. 14:30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96)







맨드라미

 

하린

 

옥상 위 사람들

현기증 속에서

붉은 지뢰를 왜 하나씩 품고 있나

햇살의 압력은 약하고

비탄의 장력은 질겨서

다년생을 그만 끝내고 싶다는 생각

이미 숨 막히도록 촘촘한데

왜 꽃처럼 폭발하고 싶어서 안달인 걸까

뇌관이 심장 속에 있다는 걸 처음 알았을 때부터

자기 자신을 완벽하게 비난할 수 없어서

광장을 참고 또 참는 수밖에 없어서

위선을 신뢰하는 정수리와

밀실을 사랑하는 혓바닥으로

질문을 덧씌우고 또 덧씌우면서

깨알 같은 분노를 옆구리에 쟁여놓으면서

확실한 절망을 품고 살았으면 그뿐인데

모든 지뢰는 왜 착하지 않다고 여기는 걸까

울음이 망각으로 바뀌는 속도를 아직도 믿지 못하는 걸까

극단을 감지하는 능력

뒤꿈치를 누르는 순간 쏟아지는 능력

한번 사용하면 끝장인데

,

!

?

태양에게 자꾸 머리를 들이미는 걸까

도화선을 든 채 라이터를 켜고

 

 

근래 젊은 시인들의 시가 난해하다고들 한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특히 관념어나 추상어는 시어로 적당하지 않다고들 하는데 이들의 시어에 나타난 공통점이 바로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어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원관념은 시인 자신만이 아는 것이 되기 쉽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시가 모두 독자들에게 의미 없는 시, 시인 자신만의 현학적인 시는 결코 아니다. 하린의 시 <맨드라미>도 그런 비판을 받는 시 중 하나이다.

시의 소재인 맨드라미는 비름과 맨드라미속의 한해살이풀로 꽃 모양이 닭 볏을 닮았다 하여 흔히 계관화(鷄冠花)라 불리기도 한다. 예전부터 화단의 한 켠에 자리하여 관상용으로 많이 심었는데, 7월에서 8월 사이에 원줄기 끝에 닭의 볏처럼 생긴 꽃이 흰색, 홍색, 황색 등의 색으로 핀다. 대개는 붉은 색으로 피지만 품종에 따라 여러 가지 색과 모양이 있다. 특히 근래에는 원예종으로 개량을 하여 꽃 모양이 다양하다.

하린의 시 속에서 맨드라미붉은 지뢰의 환치물로 보인다. 그러나 시를 읽고 단번에 그 의미를 짚어 내기가 쉽지 않다. 앞에서 말했듯이 관념적 혹은 추상적인 어휘들이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내용으로 들어가 찬찬히 따져보면 16행으로 이어진 시의 내용을 다음처럼 요약할 수 있다. , 시 속 화자가 묻고 있다.

옥상 위 사람들

1. 왜 붉은 지뢰를 하나씩 품고 있을까.

2. 왜 꽃처럼 폭발하고 싶어서 안달인 걸까.

3. 왜 모든 지뢰는 착하지 않다고 여기는 걸까.

4. 울음이 망각으로 바뀌는 속도를 아직도 믿지 못하는 걸까.

5. 왜 도화선을 든 채 라이터를 켜고 태양에게 자꾸 머리를 들이미는 걸까.

특히 마지막 질문에는 다음에 쉼표, 느낌표 그리고 물음표를 붙여 각각 행을 달리하여 강조하며 묻고 있다. 도대체 왜 그러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먼저 옥상 위 사람들은 누구일까. 맞다. 옥상 위에 사는 사람들 - 옥탑방 사람들, 다른 말로 하면 그야말로 서민들이다. 어쩌면 소외계층이란 말로 특징을 지을 수도 있을 것이나, 일상적으로 좀 가난하여 옥상 위 옥탑방에 사는 사람들 정도면 충분하다. 혹여 옥상 위에서 시위를 하는 사람들이라 해석해도 그 의미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이 사는 옥상 위 조그마한 화단에 어쩌면 맨드라미가 피었는지 모르겠다. 그 맨드라미를 옥상 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붉은 지뢰로 보는 것이다. , 옥상 위 사람들의 욕망의 분출구를 시인은 맨드라미로 환치시켜 놓은 것일 뿐이다. 그리고 각각의 질문에 연결된, 관형어절 혹은 관형구 형식으로 연결되어 있는 말들은 정확한 의미를 해석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그것도 찬찬히 읽어보면 바로 옥상 위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비유하거나 상징하는 말들이다.

특히 중간 부분에 나오는 자기 자신을 완벽하게 비난할 수 없어서광장을 참고 또 참는 수밖에 없어서는 그들의 현재 상황이고 위선을 신뢰하는 정수리와 / 밀실을 사랑하는 혓바닥으로 / 질문을 덧씌우고 또 덧씌우면서 / 깨알 같은 분노를 옆구리에 쟁여놓으면서는 그들이 취할 수 있는 행동들이 그렇게 많이 열려 있는 것이 아니란 점을 드러낸다. 그러니 확실한 절망을 품고 살았으면 그뿐이지만 그마저도 허락이 안되니 그 분노를 폭발시키려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붉은 지뢰를 터뜨리는 일이요, 지뢰란 것은 한번 사용하면 끝장이란 것을 알면서도 도화선을 든 채 라이터를 켜고’ ‘태양으로 비유된 옥상 아래의 세계 혹은 그들이 살아가는 사회를 향해 자꾸 머리를 들이미는것이다. 그들의 삶, 보다 나은 삶을 위한 것임은 더 말할 나위 없다. 그 이유를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시인이 , / ! / ?’ 그렇게 하냐고 되묻는 것은 독자들도 곡 알아두라는 요청이 될 것이다.

옥탑방에 사는 사람들, 이름하여 없는 자들의 설움이, 아니 사회를 향한 그들의 분노가, 그들이 가꾸었을 조그만 화단이나 화분의 맨드라미로 환치되어 붉은 지뢰가 되어 터뜨리려고 하는 울분을 조금은 이해하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올 여름이다. ‘옥상 위 사람들은 이 더위를 어떻게 이겨내고 있을까. 심히 걱정이 된다. 이러다가 붉은 지뢰맨드라미가 옥상 위 사람들이 뒤꿈치 누르기전에 미리 터져버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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