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최문자의 <진달래꽃>

복사골이선생 2018. 8. 21. 14:34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98)







진달래 꽃

 

최문자

 

괜찮아, 괜찮아 뒷산에 불 지른 것 불이 나를 지나 내 푸른 노트 다 태워 버린 것 가장 찬란한 사랑은 언제나 다 타고 난 가루에서 빛나는 것 한 번의 뜨거움으로 죽도록 꽃은 가루가 되겠지 한 사나흘 비 뿌리는 동안 꽃이 물이 되는 거 그 물이 불을 끄고 돌아서서 다시 푸른 노트가 되는 것 괜찮아, 괜찮아 뒷산에 불 지른 것 불 지르고 돌아서서 진분홍 물이 되는 거 알 수 없는 그 고단했던 사랑

꽃잎 날리는 모든 이별

괜찮아

 

 

최문자의 시 <진달래꽃>은 인터넷 게시판들을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눈에 들어온 작품이다. 그런데 읽자마자 감탄사가 나왔다. 좋았다. 그냥 좋았다. 산문으로 된 부분도 좋았고 마지막 두 행 운문도 좋았다. 아니 그 두 구절이 결구가 되어 구성까지 좋았다. 70을 훌쩍 넘은 분에게 이런 감성이 있다니. 아니다, 어쩌면 중년에 쓴 것인지도 모른다. 하기는 불혹에 시인으로 데뷔를 한 분이니……

첫 구절부터 괜찮아라 한다. 그것도 반복을 해 가면서. 무엇이 괜찮다는 것일까. 주된 것은 뒷산에 불 지른 것불이 나를 지나 내 푸른 노트 다 태워 버린 것이 괜찮다는 말이다. 여기서 뒷산푸른 노트는 어쩌면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화자는 뒷산을 푸른 노트로 보고 있는데, 진달래꽃이 피면서 뒷산은 불을 지른 것 같고, 당연히 뒷산인 내 푸른 노트를 다 태워버렸다. 그래도 괜찮다는 것이다.

이어서 왜 그런지가 나온다. ‘가장 찬란한 사랑은 언제나 다 타고 난 가루에서 빛나는 것이기 때문이란다. 즉 진달래꽃이 활짝 펴서 뒷산을 다 태워버린다 해도 오히려 그 안에서 가장 찬란한 사랑이 빛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 번의 뜨거움으로 죽도록 꽃은 가루가될 것이란다. 사랑의 불길에 타버리면 꽃은 가루가 된단다.

다시 괜찮아로 연결되는 것은 한 사나흘 비 뿌리는 동안 꽃이 물이 되는 거그 물이 불을 끄고 돌아서서 다시 푸른 노트가 되는 것이다. 진달래꽃이 피어 있는데 비가 내리면 꽃은 물이 되고 그 물이 불을 꺼서 다시 푸른 노트가 된다. 그래도 괜찮다는 것이다. 이어서 다시 괜찮아가 나오고 앞의 내용이 축약되어 반복된다. 그런데 불 지르고 돌아서서 진분홍 물이 되는 거가 괜찮다며 알 수 없는 그 고단했던 사랑’도 괜찮단. 맞다. 진달래꽃은 불이요 그 불은 불같은 사랑이 된다. 비록 알 수 없는것이었고 고단했던사랑이지만, 진달래꽃 피듯이 활활 불타올랐던 사랑이다.

그러니 진달래 꽃잎 날리는 모든 이별괜찮아라 말할 수 있는 것이리라. 그런데 어찌 뒷산내 푸른 노트라 생각했을꼬. 하긴 뒷산이 그냥 일반적인 산이라면 내 푸른 노트는 시인의 마음을 기록하는 것이 분명하다. 당연히 시 속의 은 진달래꽃이며 이는 다시 사랑으로 승화된다. 시 속에 표현된 내용을 그대로 따라가면, 꽃이 피고 난 후 (불에 타서는) 다시 가루가 되고 한 사나흘 비 뿌리는 동안 꽃은 물이 된다. 이 물이 불을 끄게 되고 푸른 노트를 적시며 양분이 될 것이다. 그러니 괜찮은 것이리라. 봄이 오면 뒷산은 다시 푸를 것이요, 푸른 노트에는 진분홍의 물로 꽃 같은 인생으로 피어남을 노래할 것이 아니겠는가.

분명 한 사나흘 비 뿌리는 동안 불이 꺼지더라도 사랑은 언제나 다 타고 난 가루에서 빛나는 것이라 했다. 어쩌면 시인의 내 푸른 노트에는 참 아름다운 사랑 노래가 적힐 것 같다. 그러니 꽃잎 날리는 모든 이별 / 괜찮아라 하지 않았을까. 시인의 그 느긋한 마음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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