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조숙향의 <시계꽃>

복사골이선생 2018. 8. 21. 14:39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101)







시계꽃

 

조숙향

 

태양을 찾아가요. 막대한 에너지는 화려한 꽃을 주잖아요. 화려한 뿌리 화려한 잎사귀 화려한 꽃잎 화려한 덩굴손 화려한 외모는 이 시대의 유물론. 흐름에서 밀려나지 않으려면 엄격한 규칙과 질서로 재단해야 해요. 그것이 도덕적 의무거든요. 허공에서 미끄러지는 덩굴손에 땀이 맺히고 피멍이 들지라도 그게 뭐 대수인가요. 꽃술에서 흐르는 노란상처는 흔한 기도 따위로 회개하면 되지요. 뜨거울수록 좋다고 우주에 뿌리박은 태양이 강렬한 눈빛으로 반짝거려요. 탁탁 꽃술들이 터지는 모습을 상상해요. 만개한 패션플라워! 더 권위적이고 더 위협적이지 않나요. 그런데 어쩌죠. 태양 옆자리는 애당초 아홉 개밖에 없었지만 그나마 여덟 개밖에 남지 않았어요. 경쟁에서 낙오된 바람이 꽃잎을 흔드네요. 꽃잎 접은 외로운 밤이 허공에 섞이네요.

 

 

남산 식물원에서 시계꽃을 처음 본 순간, 꽂혀 있는 팻말을 보기도 전에 시계를 연상했다. 이 꽃을 처음 본 많은 사람들도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시계의 문자판과 비슷하게 생겨 시계꽃이라 부르고 꽃시계덩굴이라고도 한단다.

시계꽃은 제비꽃목 시계꽃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브라질 원산이라는데 주로 관상식물로 재배한다. 줄기는 길이 약 4m까지 자라고, 잎은 손바닥처럼 다섯 갈래로 깊게 갈라져 있는데, 덩굴식물로서 덩굴손으로 감으면서 자란다. 꽃은 양성화로서 7월에 위를 향하여 피고 열매는 9월에 익으며 삭과로서 참외처럼 노란색이다. 열매를 식용하며, , 뿌리, 잎은 약용으로 쓰인단다.


그런데 조향숙의 시 <시계꽃>에서는 시계꽃을 단순히 시계와 닮은 것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오히려 태양을 쫓는, 어쩌면 태양을 향한 강렬한 그리움으로 그려진다. 첫 행부터 시계꽃은 태양을 찾아간단다. 왜냐하면 태양의 막대한 에너지는 화려한 꽃을 주기 때문이란다. 게다가 이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화려한 뿌리 화려한 잎사귀 화려한 꽃잎 화려한 덩굴손 화려한 외모가 필요하단다. 흔히 말하는 금수저나 마찬가지이다. 시계꽃이 그렇게 되려 노력하는 것이란다.

그렇다고 우리가 말하는 부정적 의미의 금수저가 아니다. ‘흐름에서 밀려나지 않으려면 엄격한 규칙과 질서로 재단한단다. 왜냐하면 그것이 도덕적 의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부단한 노력을 한다. ‘허공에서 미끄러지는 덩굴손에 땀이 맺히고 피멍이 들지라도’, ‘꽃술에서 흐르는 노란상처도 개의치 않는다. ‘우주에 뿌리박은 태양이 강렬한 눈빛으로 반짝거리니 그를 향한 몸부림과 상처는 시계꽃이 당연히 감내해야 할 고통일 뿐이다.


탁탁 꽃술들이 터지는 모습을 상상한단다. 그렇게 되면 바로 만개한 패션플라워!’이다. 감탄사까지 붙은 ‘passion-flower’시계꽃의 영어이름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시계꽃이라 부르지만 영어권에서는 패션플라워 - 열정꽃이다. 그 이름이 시계꽃보다 더 권위적이고 더 위협적이.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본디 태양 옆자리는 애당초 아홉 개밖에 없었지만 그나마 여덟 개밖에 남지 않았단다. 다들 알고 있듯이 태양계의 행성은 9개였다.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이다. 그런데 2006년에 국제천문연맹의 행성분류법에 따라 명왕성은 왜소행성으로 분류되어 태양계 행성은 8개가 되었다. ‘경쟁에서 낙오된명왕성의 바람이 꽃잎을 흔든단다. 그러니 태양을 향한 시계꽃의 입장에서 명왕성과 동병상련을 느끼며 꽃잎 접은 외로운 밤이 허공에 섞인다는 것이다.

시인은 시계꽃을 태양을 쫓는 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어찌 생각하면 명왕성을 환치시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시 속에 감탄사까지 붙은 만개한 패션플라워!’를 보면 분명 시계꽃을 대상으로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도 그렇지, 어찌 시계의 문자판과 비슷하게 생긴 시계꽃을 태양을 향한 열정의 꽃으로 해석했을꼬. 바로 시인의 상상력이 아니겠는가.


제목으로는 우리가 다 아는 시계꽃을 제시해 놓고 열정이란 영어권에서의 꽃 해석을 소개하려 했는지는 모르지만, 사물과 관념에 대한 시인의 새로운 해석 - 시계꽃에 대한 재해석, 바로 그것이 시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