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박남준의 <흰 부추꽃으로>

복사골이선생 2018. 11. 1. 04:01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151)







흰 부추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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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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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서툴다 사는 일이 늘 그렇다

나무를 하다보면 자주 손등이나 다리 어디 찢기고 긁혀

돌아오는 길이 절뚝거린다 하루해가 저문다

비로소 어둠이 고요한 것들을 빛나게 한다

별빛이 차다 불을 지펴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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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들 한때 숲을 이루며 저마다 깊어졌던 것들

아궁이 속에서 어떤 것 더 활활 타오르며

거품을 무는 것이 있다

몇 번이나 도끼질이 빗나가던 옹이 박힌 나무다

이건 상처다 상처받은 나무

이승의 여기저기에 등뼈를 꺾인

그리하여 일그러진 것들도 한 번은 무섭게 타오를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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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쯤이나 사는 일이 서툴지 않을까

내 삶의 무거운 옹이들도 불길을 타고

먼지처럼 날았으면 좋겠어

타오르는 것들은 허공에 올라 재를 남긴다

흰 재, 저 흰 재 부추밭에 뿌려야지

흰 부추꽃이 피어나면 목숨이 환해질까

흰 부추꽃 그 환한 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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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추는 백합과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으로 다른 채소와 달리 한 번 종자를 뿌리면 그 다음 해부터는 뿌리에서 싹이 돋아나 계속 자란다. 우리나라 전역의 산과 들에 자생하는데 농가에서는 따로 재배하며 대개 봄부터 가을까지 34회 잎이 돋아나 이를 식용한다. 꽃은 78월에 피고 흰색이며 열매는 익어서 저절로 터진다. 지역에 따라 정구지, 부채, 부초, 난총이라고 부르는데 비타민 AC가 풍부하여 마늘과 비슷한 강장(强壯) 효과를 내기에 정력에 좋은 채소로 알려져 있다.

박남준의 시 <흰 부추꽃으로>는 이러한 부추꽃의 생태를 노래한 작품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더 밝은 삶을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다만 그런 삶을 부추꽃으로 환치시켜 놓았을 뿐이다. 시 속 상황은 땔나무를 하러 갔다가 돌아오는 때이다. 전문 나무꾼이 아니니 나무를 하다보면낫이나 나뭇가지에 자주 손등이나 다리 어디 찢기고 긁혀’ ‘돌아오는 길이 절뚝거릴 것이다. 이를 시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몸이 서툴다 사는 일이 늘 그렇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하루해가 저물면 비로소 어둠이 고요한 것들을 빛나게할 것이요 이때 시인은 혼잣말로 별빛이 차다불을 지펴야겠다고 말한다.

2연은 불을 지핀 상황이다. 불 속에 타고 있는 나뭇가지들을 보며 시인은 이것들 한때 숲을 이루며 저마다 깊어졌던 것들이라 생각한다. 그들은 아궁이 속에서 어떤 것 더 활활 타오르며어떤 것은 거품을 무는 것이 있다’ - 거품을 무는 것, 바로 나무가 타며 진이 하얗게 빠지는 모습이다. 이런 나무들은 대개가 몇 번이나 도끼질이 빗나가던 옹이 박힌 나무다.’ 시인은 이를 나무의 상처로 생각한다. 그러니 상처받은 나무이다. 옹이라는 상처를 안고 있는 나무들은 이승의 여기저기에 등뼈를 꺾인것들이고 그렇게 일그러진 것들도 한 번은 무섭게 타오를 수 있음을 생각한다.

불을 지펴 나뭇가지를 태우다가 타는 모양이 다른 나무들을 보면서, 특히 옹이가 박힌 나무가 타는 모습을 통해 시인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언제쯤이나 사는 일이 서툴지 않을까하는 반성. 그리고는 내 삶의 무거운 옹이들도 불길을 타고 / 먼지처럼 날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타오르는 것들은 허공에 올라 재를 남길 것이다. ‘흰 재, 저 흰 재 부추밭에 뿌려야지하고 시인은 나뭇가지가 타고 남은 재를 부추밭에 뿌릴 생각을 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흰 부추꽃이 피어나면 목숨이 환해질까란 생각을 한다. 나뭇가지가 타고 남은 하얀 재를 부추밭에 뿌리면 부추꽃이 하얗게 피어난단다 - 이를 시인은 흰 부추꽃 그 환한 환생이라 간주하는 것이다.

삶에 대한 느낌은 모두가 주관적이기에 다들 자신의 삶이 기구하다 말할 것이다. 그것을 탓할 수는 없다. 누구든 살아가며 한 번쯤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니까. 시인은 이런 어려운 삶을 나무의 옹이로 간주한다. 그리고 그 옹이가 타며 나무의 진액이 빠지는 것을 보고는 거품을 무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결국 활활 타오르는 불 속에 몸을 다 태우고 남은 하얀 재 - 그 재는 부추밭에 뿌려져 다시 하얀 부추꽃으로 환생하는 것이리라.


물론 시인의 생각이 과학적 논리적으로 맞는 것은 아니다. 흰 재를 뿌렸다고 꽃이 흰색으로 피는 것은 아니니까. 그러나 시인이 주목하는 것은 바로 옹이 박힌 나무이다. 이는 상처받은 나무이고 이승의 여기저기에 등뼈를 꺾인우리네 삶의 흔적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일그러진 것들’ - 그렇게 상처받고 옹이가 박히고 등이 꺾였던 삶도 한 번은 무섭게 타오를 수 있지 않겠냐는 희망을 갖는 것이다. 이를 흰 부추꽃 그 환한 환생이라 말할 뿐이다.

시를 다 읽고는 문득 추어탕에 듬뿍 넣던 부추를 생각하며, 하얗게 꽃이 피었으니 그 부추는 먹지 못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잎을 먹는 채소에 꽃이 피면 그 잎에 독이 오르기 때문이다. 사실 시가 그리는 것은 부추보다는 옹이 박힌 나무인데…… 부추밭에 핀 흰 꽃들을 보며 시인은 환생을 생각했는데 나는 그저 꽃이 탐스럽다고 손전화 사진기만 들이대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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