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남대희의 <제비꽃>

복사골이선생 2018. 11. 16. 10:56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153)





제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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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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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댁 밭둑에 제비꽃이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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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랑대 휘도록 제비들이 모여앉아

지지배배거리던 시절이 있었다

밥상머리가 휜 바지랑대 같던 시절

, 잘 묵고, 우리 숟가락 하나 덜면 됐제

한마디가 식솔 덜어내는

명분으로 충분했던 시절

고개고개마다 꽃마저 서럽던 보릿고개

누이동생 식모살이 떠나던 날

아리게 밟히던 코고무신 콧등 같은 꽃이

월남 땅 떠나올 때도 피었을까?

북위 10도선 타는 태양보다

고추하우스 열기가 더욱 뜨겁게 느껴지는 것은

따이한의 매운 시집살이 때문이 아니라

비행기소리에 실려 오는 향수 때문인지도 몰라

월남댁 밭둑 위 포롬한 하늘에

아득한 구름 그리며 비행기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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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희의 시 <제비꽃>에는 두 개의 에피소드가 겹쳐진다. 첫 행 월남댁 밭둑에 제비꽃이 피었다에 나오는 월남댁제비꽃이다. 이 두 이야기가 제비꽃을 매개로 겹쳐지는데 실은 등장인물만 다르지 하나의 이야기이다.

먼저 제비꽃을 보자. ‘바지랑대 휘도록 제비들이 모여앉아 / 지지배배거리던 시절이라면 참 평화로운 풍경이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얼마나 많은 제비가 앉았으면 바지랑대가 휘어졌을까. 그러나 제비만 그런 것이 아니다. ‘밥상머리가 휜 바지랑대 같던 시절이 우리들에게 있었다. 바로 저 560년대 보릿고개 시절, 먹을 것이 없음에도 형제자매들은 여럿이었다. 그러니 바지랑대가 휠 정도로 많이 앉은 제비처럼 온 가족이 밥상머리에 둘러앉았다.

예부터 논 한 마지기 사지 말고 입 하나 덜라고 했다. 어른들은 , 잘 묵고, 우리 숟가락 하나 덜면 됐제라는 말로 가족 중 누구 하나를 덜어냈다. 결국 딸 하나를 떠나보낸다. ‘고개고개마다 꽃마저 서럽던 보릿고개시절 그렇게 화자의 누이동생은 식모살이로 집을 떠난다. 그 날 누이가 넘어가던 고개에는 아리게 밟히던 코고무신 콧등 같은 꽃이피어 있었다. 바로 제비꽃이다.

세월이 흘렀다. 한강의 기적이라느니 신경제대국이라느니 좀 먹고 살 만해졌다. 그러나 농촌에는 젊은이가 없고 농촌 총각에게 시집오겠다는 처자가 없다. 결국에는 외국에서 여자를 사온다. 베트남에서 시집왔다는 월남댁’ - 우리가 보릿고개 시절 그랬듯이 월남의 어느 가정에서도 입하나 덜자고 딸 하나를 한국으로 시집보냈을 것이리라. 그런데 제비꽃이 그녀가 월남 땅 떠나올 때도 피었을까?’

월남에도 제비꽃이 피는지는 모르지만 첫 행 월남댁 밭둑에 제비꽃이 피었다는 앞의 에피소드와 월남댁의 이야기를 하나로 연결시켜준다. 한국의 농촌으로 시집 온 월남댁은 고추하우스에서 일을 돕는다. 그런데 북위 10도선 타는 태양이 내리쪼이는 고향보다 고추하우스 열기가 더욱 뜨겁게 느껴진다. ‘따이한의 매운 시집살이 때문일까. 그것은 결코 아니다. 바로 비행기소리에 실려 오는 향수 때문일 것이리라.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은 월남댁만의 문제가 아니다. 저 보릿고개 시절 식모살이로 팔려갔던 우리의 누이동생들도 주인집 골방에서 눈물을 훔치며 지금의 월남댁과 같은 심정이었으리라. 그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 듯 월남댁 밭둑 위 포롬한 하늘에 / 아득한 구름 그리며 비행기 날아간다고 한다. 참 평화로운 풍경 - 그러나 그 안에는 가난이 가져다 준 월남댁의 삶과 그 시절 식모살이로 팔려갔던 우리네 누이동생들의 눈물이 숨어 있는 것이다.


바야흐로 다문화시대이다. 더 이상 단일 민족이란 말로는 자랑할 수 없는 시대. 동남아 여러 나라에서 우리 농어촌으로 시집을 온 처자들 그리고 그들이 낳은 아이들…… 그들을 인종차별하며 홀대하고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월남댁으로 표현된 그들의 모습은 바로 몇 십 년 전 우리네 누이동생들의 모습이 아니던가.

누이동생이 고향을 떠나던 날 고개를 넘을 때 피어 있던 꽃이지만 이제는 머나먼 고향 월남 땅이 생각날 때마다 마음을 달래며 월남댁이 바라보는 제비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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