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윤정구의 <옥잠화>

복사골이선생 2018. 11. 16. 11:30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154)






옥잠화

) --> 

윤정구

) --> 

두 누님은 쪽을 찌고 시집을 갔다

(어흠어흠)

갓 쓴 아버지는 가끔 헛기침을 하셨다

(시집 갈 때까지 머리 볶는 것은 안 되고 말고!)

) --> 

셋째 누님이 결혼식 전날

몰래 파마를 하고 돌아왔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슬아슬하다

셋째 누님은 이모들 계신 안방으로 숨고

차마 안방에까지 쫓아 들어가지 못한 아버지는

안마당에 옥잠화 은비녀를 냉동댕이치셨다

(흠 고이얀 것!

이렇게 당돌한 사람을 보았나?)

) --> 

옥잠화 하얀 꽃을 보면 누님들 웃음소리 들린다

(우리니까 어리숙하게 쪽찌고 시집갔지

대명천지에 누가 쪽을 찌고 시집을 가겠니?)

석류나무 아래 옥잠화꽃

올해도 고운 은비녀를 받쳐 들고 있다.

) --> 

) --> 

옥잠화(玉簪花)’는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인데 중국에서 들어온 외래종이지만 오랜 세월 자생 식물 못지않게 우리나라 전역에서 널리 볼 수 있는 꽃이다. 89월에 흰색 꽃이 피는데 향기가 좋으며 한자어 그대로 풀어서 옥비녀꽃이라 부르기도 한다.


윤정구의 시 <옥잠화>에서는 이 꽃을 은비녀로 보고 있다. 시 속 이야기는 화자의 세 누이가 시집갈 때 아버지와 겪었던 갈등이다. 갓을 쓰고 있는 아버지는 전통적인 가부장제의 표상으로, 시대가 이미 현대화되었음에도, 아직까지 여자가 시집을 갈 때에는 쪽진 머리여야 한다고 믿고 이를 딸들에게 행하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화자의 두 누님은 쪽을 찌고 시집을 갔다고 한다. 이 때 아버지는 어흠어흠헛기침을 하며 시집 갈 때까지 머리 볶는 것은 안 되고말고!’ 했단다. 두 누님은 아버지의 성화에 마지못해 그렇게 따랐던 모양이다.


그러나 셋째 누님은 달랐다. 그녀는 결혼식 전날 / 몰래 파마를 하고 돌아왔. 화자가 보기에는 지금도 아슬아슬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셋째 누님은 이모들 계신 안방으로 숨었고 이모들이 있는 안방에까지 차마 들어가지 못한 아버지는 화가 나서는 안마당에 옥잠화 은비녀를 내동댕이치셨다고 한다. 그리곤 흠 고이얀 것! / 이렇게 당돌한 사람을 보았나?’라 소리쳤단다.

자신의 사고방식을 고집하여 딸의 결혼을 망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요 이미 해버린 파마머리에 비녀를 꽂을 수도 없었기에 아버지로서도 포기했으리라. 결혼 전날이니 아버지도 어쩌지 못할 것이란 생각, 게다가 이모들이 있는 안방에 숨어 아버지를 피한 행동으로 쪽진 머리를 강조하는 아버지에게 항거한 셋째 누님도 그러려니와 딸 머리에 꽂을 은비녀를 안마당에 내동댕이친 아버지의 행동을 보는 화자는 정말 조마조마했을 것이다.

세월이 흘렀다. 화자는 옥잠화 하얀 꽃을 보면 누님들 웃음소리 들린다고 한다. 바로 우리니까 어리숙하게 쪽찌고 시집갔지 / 대명천지에 누가 쪽을 찌고 시집을 가겠니?’라고 말하는 누님들의 말이다. 가부장적인 틀에 갇혀 있는 아버지의 사고방식, 어쩔 수 없이 아버지의 뜻을 따랐던 두 누님과 이와는 달리 아버지의 뜻에 반해 파마머리를 했던 셋째 누님의 웃음소리이리라.


그렇기에 화자는 석류나무 아래 옥잠화꽃을 보면 마치 고운 은비녀를 받쳐 들고 있는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어쩌면 아버지가 안마당에 내동댕이친 옥비녀가 옥잠화로 피어난 것인지도 모른다. 그만큼 두 누님이 시집갈 때 머리에 꽂았던 비녀 그리고 아버지가 내동댕이친 옥비녀가 뇌리에 남아 옥잠화 꽃모양이 정말 옥비녀로 보였을 것이리라.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채민의 <파꽃>  (0) 2018.11.17
박이화의 <신규방가 - 백목련>  (0) 2018.11.17
남대희의 <제비꽃>  (0) 2018.11.16
채호기의 <감귤>  (0) 2018.11.16
박남준의 <흰 부추꽃으로>  (0) 2018.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