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박이화의 <신규방가 - 백목련>

복사골이선생 2018. 11. 17. 03:46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155)






신규방가

- 백목련

 

박이화

 

차타리 부인도 그렇고 보바리 부인도 그렇고 수로 부인도 그렇고 왜 동서고금의 부인들은 모다 에로틱 할까? 그럼 외로울 사 이내 몸도 목련 부인이라 고쳐 보면 꽃 중에 가장 농염한 꽃이 될 수 있을까? 그러나 내가 슬픈 건 어째도 나는 그리 될 수 없다는 것 이 몸이 죽어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도 그리 될 수 없다는 것 나는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꽃! 청상의 꽃 이화에 월백하는 저 운우지정을 그리워할 수 있으랴? 싱싱한 푸른 잎에 안겨 피는 동백이면 몰라도 불끈한 꽃대 위에 흐드러진 모란이면 몰라도 나는 일생 꽃이 잎을 보지 못하는 꽃! 수절하는 꽃! 그렇거늘 내 어찌 언감생심 꽃 중이 꽃이 될 수 있을까

 

 

백목련(白木蓮)은 목련과 비슷하지만 꽃이 흰색이어 그렇게 부르는데 글자 그대로 나무에 핀 하얀 연꽃이다. 흔히 복수초나 매화 혹은 산수유 등과 함께 봄의 전령사로 불리는데 희디 흰 색 때문에 순백의 이미지로 맑고 깨끗함을 표상하여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꽃이다. 그런데 잎이 나기 전에 꽃망울을 터뜨리지만 이내 져버려 잎과 꽃이 같이 피는 경우는 드물다. 본디 숲 속에 자라던 나무이지만 관상용으로 많이 심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이다.

박이화의 시 <신규방가 - 백목련>에서는 꽃과 잎이 같이 피지 못하는 이 꽃의 특성을 수절하는 꽃으로 보고 있다. 시 제목이 신규방가이다. 새로 쓴 규방가사(閨房歌詞)’란 뜻이다. 규방가사는 주로 양반부녀자 층에 의해 향유된 가사로 그들의 생활주변에서 얻은 것을 소재로 하고 있다. 교훈적인 것도 있지만 주로 속박된 여성생활의 고민과 정서를 호소하는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그렇다면 시가 말하는 신규방가는 어떤 내용일까. 부제로 백목련이 붙어 있으니 바로 백목련을 그린 것이라 할 수 있다. 시 속 화자는 백목련에 동화되어 예전의 규방가사처럼 신세 한탄을 한다. 먼저 차타리 부인, 보바리 부인, 수로 부인…… 왜 동서고금의 부인들은 모다 에로틱 할까?’란 의문을 제기한다. 저들이 에로틱하다니 그게 무슨 말일까.

차타리 부인은 남편을 두고 집안의 사냥터지기인 멜러즈와 사랑을 나누고, 보봐리 부인은 의사 남편을 두고 홀아비 지주인 로돌프와 공증인사무소 서기인 레옹과 애정행각을 벌인다. 수로부인은 어떠한가. 용모와 자색이 매우 뛰어난 수로 부인에게는 지나가던 늙은이도 꽃을 꺾어 바쳤고, 깊은 산이나 큰 못을 지날 때에는 여러 차례 신물(神物)에게 붙들려 가기도 한다. 즉 자의건 타의건 이들은 애정행각과 연관되어 있다. 게다가 셋 다 부인이고 화자는 이들이 에로틱하다고 말한 것이다.


여기서 화자는 자신이 백목련이니 세 부인들처럼 자신도 부인이라 이름 지을 것을 생각하며 목련 부인이라 고쳐 보면 어떨까 한다. 그렇게 되면 꽃 중에 가장 농염한 꽃이 될 수 있을까?’라 다시 묻는다. 에로틱이 이제는 농염(濃艶)이란 단어로 바뀌며 자신도 세 부인과 같은, 남편을 두고 다른 남자들과 애정행각을 벌이는, 어쩌면 자유롭게 욕정을 발산하는 여자가 되고 싶다는 뜻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이 몸이 죽어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도그렇게 될 수 없는 이유는 뭘까. 세 부인에게는 남편도 있고 애정행각을 함께 할 남자가 있었다. 그런데 백목련인 화자는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꽃!’이니 청상의 꽃이다. 짝이 없다. 그러니 당연히 이화에 월백하는 저 운우지정을나누지 못한다. 욕정을 불태우려 해도, 아무리 농염한 자태를 지녔더라도 함께 나눌 짝이 있어야 할 터인데, 잎이 나기도 전에 꽃이 피고 잎이 나기도 전에 꽃이 져버리니 짝을 만날 수가 없다.


싱싱한 푸른 잎에 안겨 피는 동백이나 불끈한 꽃대 위에 흐드러진 모란이라면 몰라도 백목련은 일생 꽃이 잎을 보지 못하는 꽃!’이다. 그러니 수절하는 꽃!’ 바로 청상(靑孀)’이다. 그렇기에 아무리 목련 부인이라 이름을 바꾼다고 해도 내 어찌 언감생심 꽃 중이 꽃이 될 수 있을까라 한탄하는 것이다.

그런데 표현들이 참 재미있다. ‘외로울 사 이내 몸이라든가, ‘이 몸이 죽어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그리고 이화에 월백하고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구절이다. 맞다. 유리왕의 <황조가>, 정몽주의 <단심가> 그리고 이조년의 시조에서 빌려왔다. 그런데 이렇게 옛 시가에서 마구 빌어다 써도 될까. 혹시 표절이 아닐까. 그러나 전혀 걱정할 것이 없다. 이런 구절들은 대한민국 학교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다 아는, 이미 진부한 표현이 되어버린 것들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진부한 표현을 자신의 시에 인용하여 오히려 그 뜻을 명확하게 하는 구절로 바꾸어 놓았다. 오히려 잘 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어찌 읽으면 농염한, 에로틱한 여자가 되고픈 욕망을 드러내는 것 같다. ‘백목련이란 꽃을 통해 은근히 성적 욕망을 표출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농염, 에로틱이란 말로 포장하여 겉으로는 세 부인처럼 되고 싶다고 하는 것이지, 실은 부제에 나와 있듯이 꽃과 잎이 결코 만나지 못하는 백목련의 특성을 아주 잘 표현한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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