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고경숙의 <석류>

복사골이선생 2018. 11. 19. 05:23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157)






석류) -->



고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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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정기에 들어선 원숭이 떼가

엉덩이를 까고 놀리는 줄 알았다.

빨간 석류,

아니 차도르 쓴 여자의 은밀한 곳처럼

검붉다는 게 정확하겠지

이란딱지 하나씩 엉덩이에 붙이고

위장한 여전사들

어쩌면 저속엔 투명한 탄환알갱이들이

가득 숨겨져 있을지 몰라

허름한 시장통

경계 느슨한 그 곳에서

미제에 물든 내 뱃속을 향해

기습테러를 계획하고 있는 낯선 무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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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류(石榴)는 이란이 원산인 석류나무의 열매로 가을철 빨갛게 입을 벌린 모습은 참 아름답다. 둥근 모양의 석류는 단단하고 노르스름한 껍질이 감싸고 있는데 과육 속에는 구슬처럼 아름다운 빨간 종자가 있다. 잘 익으면 껍질이 스스로 벌어지는데 과육은 새콤달콤한 맛이 난다. 석류에는 여성호르몬 유사 성분이 풍부하여 여성의 과일이라고 불리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주로 차로 끓여 마시거나 즙을 내 먹고 날로 먹기도 한다.

고경숙의 시 <석류>에서는 이 과일을 미국을 침략하려는 이란의 여전사들로 파악한다. 시인이 파악하고 있는 석류의 외양부터가 재미있다. ‘허름한 시장통좌판에서 팔고 있는 빨갛게 익은 석류를 보고는 발정기에 들어선 원숭이 떼가 / 엉덩이를 까고 놀리는 줄 알았다.’고 한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갛고 빨가면 사과인데 어찌 석류를 생각했을꼬.


그것만이 아니다. ‘빨간 석류,’차도르 쓴 여자의 은밀한 곳처럼 / 검붉다고 한다. 어쩌면 원숭이 엉덩이라기보다는 여자의 은밀한 곳이란 표현이 더 정확하겠지라고 한다. 글쎄, 여자의 은밀한 곳과 석류라…… 차도르 쓴 여자의 그곳을 본 적이 없으니 잘 모르겠지만 착상이 기발하다. 원숭이 엉덩이에서 갑자기 여자의 은밀한 곳까지. 문제는 차도르쓴 여자이다. , 원숭이와 차도르 다 중동 특히 이란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그러니 석류는 ‘‘이란딱지 하나씩 엉덩이에 붙이고 / 위장한 여전사들인 것이다. 석류의 원산지가 이란이란 것에서 이런 상상이 나온 것이리라. 나아가 어쩌면 저속엔 투명한 탄환알갱이들이 / 가득 숨겨져 있을지모른다고 한다. 석류가 여전사들이라면 석류 속에 있는 알갱이들은 탄환이라는 것. 하긴 수류탄이나 유탄발사기는 석류 ()’이다. 석류가 수류탄이요 그 안에 탄환이 들어 있다는 착상 - 그럴 듯하다. 어떻게 이런 상상이 나올 수 있었을까.


호메이니의 이란 혁명 이후 이란과 미국은 갈등을 빚어왔다. 친미 정권이었던 팔레비왕조가 무너지며 마지막 왕이 망명을 하고 그것을 미국이 받아주며 갈등이 시작되었지만 이후 핵 갈등까지 일어나며 서로 상극이 되었다. 아직까지 계속되는 국제 관계 속 이란과 미국의 갈등 - 여기서 시인은 석류의 원산지가 이란이란 것을 통해 석류를 미국을 공격하고자 하는 이란의 여전사로 간주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을 공격해야지 왜 한국 땅에? 그것은 허름한 시장통 / 경계가 느슨한 그 곳에서미국을 공격하려는 것이다. 미국 본토 대신에 미국의 우방국 혹은 점령지를 공격하는 것이다. 바로 햄버거나 핫도그 등 미국 식품을 많이 먹어 미제에 물든 내 뱃속을 향해 / 기습테러를 계획하고 있는것이다. 그러니 서구 음식에 길들여진 내 뱃속에는 낯선 무리들이 된다.


차도르를 쓴 이란 여자가 은밀한 곳에 수류탄을 감추고 있고, 속엔 투명한 탄환알갱이들이 / 가득 숨겨져 있으며 그 탄환들은 미제에 물든 내 뱃속을 향해 / 기습테러를 계획하고 있다는 시인의 인식. 석류의 원산지가 이란이라는 사실 그리고 석류의 외양이 수류탄과 흡사하다는 것에 착안하여 이란과 미국의 갈등을 근거로 석류의 알갱이들이 미국 식품에 길들어진 뱃속을 기습테러하려는 것으로 파악한 것이다. 참 재미있지 않은가.

과일이 시의 소재가 되면 흔히 겉과 속 모습, 색깔 혹은 맛에 초점이 맞춰진다. 그런데 고경숙 시인의 시선은 그런 것을 뛰어 넘는다. 석류의 모습은 물론이지만 원산지만이 아니라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이란과 미국의 갈등 거기에 이슬람의 미국에 대한 테러 행위까지 나아간다. 바로 시인의 안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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