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고진하의 <문주란>

복사골이선생 2018. 11. 21. 00:18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160)






문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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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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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락에 핀 꽃들을 보며 벌건 대낮부터 곡차 한 사발씩 벌컥벌컥 들이켰다. 모두들 벌게진 눈길로 길쭉길쭉한 푸른 잎새들 사이에서 말좆 같은 긴 꽃대를 하늘로 쑥 뽑아 올린 문주란을 감상하고 있는데, 훌떡 머리 벗겨진 중늙은이 거사(居士)가 문주란을 가리키며 이죽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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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년 저년 찝쩍거리지 말고

저 문주란처럼

좆대를

하늘에다 박아,

하늘에다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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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머리 거사의 일갈 때문일까. 문주란이 놓여 있는 뜨락 위의 하늘이 더 깊고 쨍쨍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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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주란은 수선화과에 속하는 상록의 다년생 초본식물로 꽃이 아름답고 짙은 향기 때문에 관상적가치가 높아 화훼용으로 많이 보급되어 전국적으로 화분에 많이들 키운다. 꽃은 79월에 피며 화경은 높이 5080, 지름 1.8정도로 잎이 없다. 온난한 해안의 모래땅에서 잘 자라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토끼섬에만 자생하고 있으며 이 토끼섬의 문주란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고진하의 시 <문주란>에서는 이 꽃을 말좆에 비유하고 있다. 시를 읽고 보니 문주란 꽃이 말좆과 유사한 부분이 있다. 바로 길게 쭉 뻗어 올라온 꽃대가 그렇고 꽃대 위에 넓게 퍼진 꽃 모양이 마치 발기한 수컷 말의 성기와 유사하다. 수컷 말의 성기가 긴 것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발기했을 경우 귀두 부분이 뾰족한 것이 아니라 펑퍼짐하게 퍼진다. 그러니 하늘을 향해 길게 올라온 꽃대와 그 위에 퍼져 있는 문주란 꽃은 정말 비슷하다.


시를 보자. 몇 명인지는 모르지만 시 속 화자와 지인들이 뜨락에 핀 꽃들을 보며 벌건 대낮부터술판을 벌인 모양이다. ‘한 사발씩 벌컥벌컥 들이켰다고 하니 많이도 마셨을 것이다. 술이 들어가면 개가 된다고 했던가. 음담패설이 자연스레 나오고 누군가는 자신의 여성편력을 과장되게 마치 힘깨나 쓴다는 듯이 떠벌렸을 것이요 모두들 박장대소하며 부추겼을지도 모른다.

그런 대화 중이니 모두들 벌게진 눈길로 길쭉길쭉한 푸른 잎새들 사이에서 말좆 같은 긴 꽃대를 하늘로 쑥 뽑아 올린 문주란을 감상하고 있었단다. 문주란만 그랬겠는가. 주변의 온갖 사물들이 여성의 그곳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면 술기운까지 더해져 아랫도리에 힘이 불쑥 가해지곤 했을 것이다. 어쩌면 문주란 꽃대를 정말 말좆으로 상상하다가 자신의 그것 크기와 견주며 부러워했을지도 모른다.


그때, ‘훌떡 머리 벗겨진 중늙은이 거사(居士)가 문주란을 가리키며 이죽거렸단다. ‘이년 저년 찝쩍거리지 말고 / 저 문주란처럼 / 좆대를 / 하늘에다 박아, / 하늘에다 말이야!’라고. 여성편력으로 목에 힘을 주던 사람도, 그 이야기에 박장대소하며 은근히 부러워하던 사람도 멈칫 했을 것이다. ‘대머리 거사의 일갈 때문일지도 모른다. 화자의 눈에 문주란이 놓여 있는 뜨락 위의 하늘이 더 깊고 쨍쨍해 보였다고 한다.

처음 읽으면서는 뭔 시가 이렇게 상스러울까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하긴 시인도 이 시를 쓴 이후 1년을 고민하다 발표를 했다던가. 말좆, 좆대, 박아…… 정말이지 남정네들 술자리에서나 주고받을 상스런 말들이 시 속에 버젓이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아시는가. 고진하 시인은 신학교를 나온 제대로 된 목회자이다. 그런 사람이 이렇게 상스런 어휘들을 시 속에 구사해 놓다니.


그런데 그렇게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비록 말좆에 비유했지만, 하늘을 향해 불쑥 솟아오르는 꽃대, 그 위에 찬란하게 마치 불꽃놀이 하듯 둥그렇게 퍼지는 꽃 - 결국 문주란 꽃대가 자라는 모습 그리고 꽃이 피는 모양을 통해 삶의 자세를 말하고 있는 것이리라. 목회자이기에 어쩌면 더 자유롭게 성()과 속()을 넘나들며 하고픈 말을 가장 적확한 비유로 전달하는 것이 아닐까. 상스럽다면 한없이 상스러울 단어들이지만 왜 그런 어휘가 쓰였는지를 생각하면 이미 시적 효과는 충분히 거두고 있는 것이리라.


맞다. 이 년 저 년 넘보지 말고 오로지 한 여자에게 올곧게 들이대라는 말로 들리지만, 실은 여자가 아니라 하늘을 향해 곧게 쑥 밀고 올라오는 꽃대, 그 위에 사방으로 퍼지는 꽃들처럼 삶의 목표를 향해 용왕매진하는 자세를 가지라는 충고일 것이다. 그런 깨달음이 있으니 하늘이 더 깊고 쨍쨍했다가 아니라 화자의 눈에 하늘이 더 깊고 쨍쨍해 보였지 않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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