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김영산의 <봄똥>

복사골이선생 2018. 11. 22. 03:00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162)





봄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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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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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겨우내

떨며 생솔가지 배던 조선낫으로

그늘진 텃밭 지푸라기 쓸고 눈을 털면

힘살 백인 배추싹들 가슴 멍들도록 살아서

, 견디기 힘든 시절을 뿌리째 끙끙 앓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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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동이란 겨울철 노지에 파종하여 봄에 수확하는 배추를 가리킨다. 냉이, 달래 등과 함께 대표적인 봄채소로 꼽히는데 잎이 땅바닥에 붙어 자라기에 납작배추라 부르기도 한다. 봄동이란 종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일반 배추지만 겨울을 나고 봄에 수확했을 때 봄동’, 발음 그대로 봄똥이라 일컫는다. 겨울철 추운 날씨 때문에 김장배추처럼 속이 꽉 찬 결구형이 아니라 개장형으로 잎이 옆으로 퍼져있지만 일반 배추에 비해 수분이 많을 뿐만 아니라 아미노산이 풍부하고 단맛이 강하며 조직이 연해 아삭아삭한 식감이 있다. 겉절이와 나물 무침에 안성맞춤으로 비타민과 항산화 물질이 풍부해 노화 방지에 효과적이라고 한다.

김영산의 시 <봄똥>은 이 배추가 겨울을 이겨내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화자의 어머니겨우내추위에 떨며 생솔가지를 배었던 모양이다. 그 생솔가지를 배던 조선낫으로이번에는 그늘진 텃밭지푸라기 쓸고 눈을 털면그 아래 힘살 백인 배추싹들이 있다. 그런데 얼마나 추운지 가슴 멍들도록 살아있다. 어머니는 그 배추싹을 보며 말한다. ‘, 견디기 힘든 시절을 뿌리째 끙끙 앓고 있구나라고.


시의 내용이래야 이처럼 간단하다. 화자가 보여주는 그림 속에 어머니가 나온다. 어머니는 추운 겨울에도 생솔가지를 배어 땔나무로 썼던 모양이다.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산골에 혹은 농촌에 살고 있는 어머니들의 모습이다. 그늘진 텃밭에는 눈이 내렸다. 어머니가 생솔가지를 배어내던 낫으로 땅을 덮고 있던 지푸라기 걷어내고 눈을 털어내면 그 아래에 배추싹들이 보인다. 이름하여 봄동이다. 겨울의 추위와 싸우느라 힘살이 백이고 가슴에는 멍이 들었다. 옆으로 쫙 펴지고 구멍도 숭숭 뚫린 봄동 배춧잎의 모습이 꼭 그렇다.


배추와 관련하여 많이들 모르고 있는 사실이 있다. 바로 배추가 추위에 강하고 더위에 약하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겨울을 이겨내고 봄에 수확할 경우 배추의 맛이 더 강하다고 한다. 일반적인 밭이 아니라 고랭지, 즉 높은 산에 있는 밭 - 기온이 낮은 곳에서 자란 배추가 더 좋은 값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배추는 더위에는 약하다. 배춧잎은 높은 기온에 둘 경우 얼마를 버티지 못하고 금방 썩어버린다.

이런 봄동을 보며 어머니가 하는 말 - 시의 마지막 행은 바로 어머니 자신을 향한 말이기도 하다. 추운 겨울을 보내며 뿌리째 끙끙 앓는 모습은 봄동이기도 하지만 겨울을 나던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시의 제목이 봄똥즉 표준어인 봄동을 소리 나는 대로 적어 놓은 것인데 실은 봄동이 아니라 어머니이다. 분명 화자의 시선은 봄동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시인은 봄동을 통해 어머니를 그리고 있는 것이리라.


아무리 가난한 살림이라도 자식들 뒷바라지 하느라 팔다리에 힘줄 드러나고 가슴은 멍들었지만, 그래도 다시 추운 겨울을 이겨내느라 뿌리째 끙끙 앓고 있는 우리네 어머니들 - 바로 봄동의 모습이 그러하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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