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고찬규의 <죽순>

복사골이선생 2018. 11. 22. 22:49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163)






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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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찬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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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 옆

불쑥불쑥 솟아오른

죽순들

저마다의 사연이야 내사 모르지만

단 하나 분명한 것

그들에게 단단해져야 할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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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순은 대나무의 땅속줄기에서 돋아난 어리고 연한 싹이지만 성장한 대나무에서 볼 수 있는 특성은 다 갖추고 있다. 아직 다 자라지 않은 마디 사이와 그것을 가로지르는 마디가 교대로 빽빽하게 늘어서 있는 것이다. 마디에는 한 장씩 대나무껍질이 좌우 두 줄로 마주보며 붙어 있고 아래쪽 마디의 바로 위에는 고리 모양의 짧은 뿌리가 있다. 보통 왕대 · 솜대 · 죽순대 등의 죽순은 여러 영양소가 함유되어 있어 식용하는데 죽순대의 죽순을 상품으로 꼽는다.

고찬규의 시 <죽순>은 아주 짧은 시편 속에 죽순을 통해 자연의 이치를 설파한다. 죽순이 묘지 옆 / 불쑥불쑥 솟아오른다고 한다. 대나무 밭 가장자리에 있는 묘지일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솟은 죽순들의 저마다의 사연이야 내사 모르지만화자는 한 가지는 알고 있다. 그 한 가지는 아주 분명한 것이라는데 바로 그들에게 단단해져야 할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시를 읽으며 종종 독자들은 뭔가 심오한 의미를 파악하려 애를 쓴다. 이 시에서도 죽순이 솟는 것을 보고 왜 죽순이 솟을까, 어떤 사연들이 땅 위로 솟아오르게 할까를 생각하며 묘지와 연관지어 상상을 한다. 무덤 속에 묻혀 있는 망자의 어떤 한을 풀어내려는 것일까. 아니면 망자가 하고픈 말을 대신 전하는 것일까. 여러 복잡한 상상을 한다.

그런데 그런 상상은 이 시를 이해하는 데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 아주 단순하게 읽으면 된다. 대나무 숲 가장자리에 있는 묘지. 그곳에 죽순이 솟는다. 아마 대나무의 뿌리가 묘지 부근까지 뻗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솟은 죽순은 대나무의 어린 싹이니 아직 약하다. 그러니 사람들이 그것을 캐다가 나물로 먹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 약한 죽순은 자랄 것이다. 자라며 점점 키가 크고 단단해질 것이다. 왜 단단해질까. 결코 어떤 외부적 요인이 죽순을 단단해지게 하지 않는다. 오로지 본성 때문이다. 즉 죽순이고 자라면 대나무가 될 것이기 때문에 단단해지는 것이다. 단단해지지 않으면 대나무라 할 수 없지 않은가.


사실 단순한 이치인데 마치 뭔 심오한 뜻을 품고 있을 것처럼 상상을 하면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지극히 단순한 의미를 놓치게 된다. 죽순이 단단해지는 것이 외부적 요인이라든가, 아니면 묘지 옆이라 했으니 땅 속에 묻힌 망자의 어떤 뜻이 죽순을 단단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은 너무 멀리 나간 상상력이다. 죽순은 아직 어리기에 비록 연하지만 점점 자라며 단단해진다. 단단해 져야만 대나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죽순이 단단해지는 것은 그것이 죽순이기 때문이다. , 대나무는 단단해야 하고, 죽순이 대나무가 되기 위해서는 단단해져야만 한다. 그것이 죽순이 지닌 본성이다. ‘그들에게 단단해져야 할 이유가 있다고 단호하고 분명하게 말하는 것은 바로 자연의 이치가 그렇기 때문이다. 이를 달리 말하면 사람은 사람다워야 한다는 단순한 자연의 이치일 뿐이다.

나는 인간으로서 그 본성을 키우고 있는가. 그만큼 단단해지고 있는가. 혹여 본성을 잃은 것은 아닌가. 죽순이 대나무가 되기 위해 단단해지듯이 인간으로 태어난 나는 과연 인간으로 제 몫을 다 해내고 있는가. 살아가며 늘 생각해야할 화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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