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김윤이의 <등꽃이 필 때>

복사골이선생 2018. 11. 24. 14:00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165)








등꽃이 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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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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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 안 노파 둘이 서로의 머리에 염색을 해준다

솔이 닳은 약을 묻힐 때 백발이 윤기로 물들어간다

모락모락 머릿속에서 훈김 오르고 굽은 등허리가 뽀얀 유리알처럼

맺힌 물방울 툭툭 떨군다 허옇게 세어가는 등꽃의

성긴 줄기 끝, 지상의 모든 꽃잎

귀밑머리처럼 붉어진다

염색을 끝내고 졸음에 겨운 노파는 환한 등꽃 내걸고 어디까지 가나

헤싱헤싱한 꽃잎 머리 올처럼 넘실대면 새물내가 몸에 배어 코끝 아릿한 곳

어느새 자욱한 생을 건넜던가 아랫도리까지 걷고 내려가는 등걸 밑

등꽃이 후드득,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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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나무는 장미목 콩과의 낙엽 덩굴식물로 혹은 참등으로 부르기도 하며 이 나무에 피는 꽃을 등꽃이라 한다. 주로 여름에 뙤약볕을 막아 그늘을 만들기 위해 심는 나무 덩굴로 야생에서도 자라지만 사찰과 정원 혹은 공원에 많이 심어 키운다. 꽃은 5월에 잎과 같이 피고 밑으로 처지며 연한 자줏빛이지만 흰색도 있다. 알맞게 자란 등나무 줄기는 지팡이 재료로 적합하다고 한다.

김윤이의 시 <등꽃이 필 때>에서는 이 등나무와 등꽃을 목욕탕 안에서 머리 염색을 하는 노파로 환치시켜놓고 있다. ‘목욕탕 안 노파 둘이 서로의 머리에 염색을 해주고 있다. 노파라 했으니 흰머리를 검게 염색하는 것이리라. 염색을 자주 하다 보니 닳아버린 솔로 염색 약을 묻힐 때 백발이검은 빛을 내며 윤기로 물들어갈 것이다. ‘모락모락 머릿속에서 훈김 오를 것이고 목욕을 하던 중인 노파들이니 굽은 등허리가 뽀얀 유리알처럼 / 맺힌 물방울 툭툭 떨굴 것이다. 목욕을 하다가 서로의 머리를 염색해 주는 두 노파의 모습이다.

여기서 화자는 노파를 등나무와 등꽃으로 본다. 사실 우리들은 등꽃만을 바라보지 등나무의 줄기, 즉 등걸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러나 시인은 노파의 몸을 등나무 등걸로 보고 머리는 등꽃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그러니 노파의 머리는 허옇게 세어가는 등꽃의 / 성긴 줄기 끝이다. 등꽃은 주로 자줏빛이지만 흰색도 많다. 아니 자줏빛으로 피었다가도 만발하면 흰색을 띠게 된다. 여기서 화자는 등꽃의 자줏빛과 흰색을 다 그려 넣는다. ‘지상의 모든 꽃잎 / 귀밑머리처럼 붉어진다가 그것이다. , 염색을 한 두 노파의 머리카락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렇게 염색을 끝내고물이 들기를 기다리는데 졸음에 겨운 노파는 환한 등꽃 내걸고 어디까지 가는 것일까. 여기서 어디는 어느 특정 장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시간일 것이다. 흰머리를 검은 색으로 염색하면 십 년은 젊어 보인다던가. 검게 염색한 노파는 머리만큼은 나이를 거꾸로 먹을 것이다. 그러니 헤싱헤싱한 꽃잎 머리 올처럼 넘실대게 될 것이리라. 다만 10년은 젊어졌지만 염색약 새물내가 몸에 배어 코끝 아릿할 것이다.


염색을 완료한 노파가 머리를 감으면 비록 등걸은 꾸부정하니 아랫도리까지 걷고 내려가는것처럼 보일지라도 어느새 자욱한 생을 건넜던가싶을 정도로 머리만큼은 젊어진다. 꾸부정하고 마른 등나무의 등걸, 그러나 그 위에는 아름다운 등꽃이 핀다. 바로 가슴, , 허리, 다리는 노파이지만 머리만큼은 윤기 흐르는 검은 빛, 젊어 보인다. 그러니 등꽃이 후드득, 핀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시 속 등꽃의 은 여러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 lamp)’으로 보거나 혹은 배와 가슴 뒤편에 있는 등(, back)으로 해석할 수 있다. 어느 것으로 이해를 해도 흰머리를 검게 염색한 노파의 머리카락 혹은 노파의 몸이다. 생각해 보면 등()불로 흔들리다 자욱한 생을 내려가는 비쩍 마른 등걸 밑의 풍경은 염색약으로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검게 염색한 헤싱헤싱한 꽃잎 머리로 잠시나마 시선을 멈추게 하는 것이리라.

등나무의 등걸 그리고 등꽃 - 시인의 예리한 관찰력이 이를 목욕탕에서 염색하는 노파들로 환치시켜놓은 것이리라. 지팡이로 쓰기도 한다는 비쩍 마른 등나무 등걸과 노파의 몸매 그리고 화려하고 향기로운 등꽃과 검게 염색한 머릿결이 바로 그렇다. 그런 노파를 보며 등꽃이 후드득, 핀다는 시인의 시선이 참 따뜻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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