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서수찬의 <살구나무>

복사골이선생 2018. 11. 27. 16:26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167)






살구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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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수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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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는 나무에서 떨어져

바닥에 굴러다니는 것이 달고

더 맛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무에 붙은 열매는

그만큼 욕심을 붙잡고 있어서

열매에 대한 애착이 심해서

떫고 맛이 없다고 했다

나는 살구나무와 멀리

떨어져 살아서 그걸 몰랐으나

근처 밭에서 평생 살던 사람이

알려 준 후였다

내 시집에서 떨어져 나간 내 시가

인터넷에서 마구 굴러 다니고

밟히고

어떤 것은

제목까지 바뀌어 있는 것이 희한하게

더 맛있고 달곤 했다

내 것이란 생각을 잊고 산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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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나무는 장미과 벚나무속에 속하는 식물로 중국 북서부가 원산지이나 우리나라 전역에 널리 재배된다. 잎보다 꽃이 먼저 피며 꽃은 흰색에서 분홍색 빛을 띤다. 이 나무의 열매인 살구는 둥근 모양이고 지름 약 3cm이며 털이 나 있다. 7월에 노란빛 또는 노란빛을 띤 붉은색으로 익으며 신맛과 단맛이 난다. 우리나라에는 일본과 미국을 통해 들어온 여러 품종과 재래종이 있으며 1970년대 초부터 과수원에서 재배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항암식품으로도 인정받고 있는데 보통 날로 먹거나 건과 · · 통조림 · 음료 등을 만들어 먹는다.

서수찬의 시 <살구나무>는 나무에서 떨어진 살구의 맛을 통해 자신의 시집에서 떨어져 나간 시의 특질을 서술하고 있다. 화자는 살구는 나무에서 떨어져 / 바닥에 굴러다니는 것이 달고 / 더 맛있다고 한다. 실은 모르고 있었는데 근처 밭에서 평생 살던 사람이 / 알려 준 후였다고 한다. 어쩌면 떨어진 살구를 먹어보고는 그렇게 느끼던 차에 확실하게 알았을 것이다. 왜 떨어진 살구가 맛있을까. ‘나무에 붙은 열매는 / 그만큼 욕심을 붙잡고 있어서 / 열매에 대한 애착이 심해서 / 떫고 맛이 없기 때문이란다. 물론 화자의 말이 아니라 평생 살구 밭에서 일한 사람의 말이니 믿을 만한 정보이다.


여기서 화자는 자신의 시들을 생각한다. ‘내 시집에서 떨어져 나간 내 시가 / 인터넷에서 마구 굴러다니고 있단다. 화자의 시집을 읽은 독자가 마음에 드는 시를 블로그나 인터넷 게시판에 올렸을 것이고, 이를 읽고 좋아하게 된 다른 네티즌들이 복사해서 옮겼으리라. 그러니 한 번 인터넷에 올라간 화자의 시는 이리저리 퍼지게 된다. 그런데 화자의 시라는 것을 밝힌 것도 있지만 때로는 밟히고 / 어떤 것은 / 제목까지 바뀌어 있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화자로서는 심히 불쾌하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이것이 내 작품인데 왜 이렇게 허락 없이 변형을 시켰냐고 댓글로 싸우기도 좀 그렇다.

그런데 참 묘한 것이 있다. 그렇게 인터넷에 마구 떠돌아다니는 것이 희한하게 / 더 맛있고 달곤 했다는 것이다. 즉 시집의 시들 중에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시들이 더 좋은 시로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는 논리적으로 증명이 된다. 인터넷에 올린 독자는 화자의 시집 중에 마음에 드는 작품을 택하여 올렸을 것이다. 그렇게 게시된 시들을 다른 네티즌들도 본다. 그리고는 마음에 들면 복사하기나 퍼가기로 자신의 싸이트에 다시 게재한다. 여러 곳에 퍼진 것일수록 당연히 네티즌들의 공감을 많이 받은 작품이다. 따라서 시집에서 떨어져 나와 인터넷에 많이 떠돌아다니는 작품이라면 독자 혹은 네티즌들로부터 이미 좋은 시라 평가 받은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화자라고 이러한 것을 모를 리가 없다. 다만 화자는 이를 달리 해석한다. 바로 나무에서 떨어진 살구가 더 맛있는 근거와 맥을 같이 한다. 나무에 매달린 살구는 살구나무가 그만큼 욕심을 붙잡고 있는 것이요 열매에 대한 애착이 심한 것이어 그만큼 떫고 맛이 없다고 했다. 물론 이는 당연한 것이다. 태풍이나 소나기에 의해 떨어진 것이 아니라 저절로 떨어진 살구라면 그만큼 익을 대로 익은 것이다. 그러니 자연스레 떨어진 것이고 당연히 맛이 있을 수밖에 없다.

화자의 시도 마찬가지이다. 시집으로 묶어 출간을 했는데 그 중 몇 편이 인터넷에 떠돌아다닌다는 것은 화자로서는 내 것이란 생각을 잊고 산 후의 일이다. 즉 살구나무의 열매에 대한 애착이 살구를 나무에 매달려 있게 하고 그런 것들이 떫고 맛없는 것처럼, 시집에 실렸지만 인터넷에 전혀 흔적이 없다면 독자나 네티즌들로부터 외면을 받은 것이리라. 그 반대로 많이 떠돌아다니는 작품은 그만큼 많은 독자와 네티즌들로부터 평가를 받은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좋은 시가 될 것이요, 후에 화자가 읽어보아도 좋지 않겠는가.


살구나무에서 떨어진 살구와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자신의 시를 통해 화자는 욕심이나 애착 혹은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것, 이를 내 것이란 생각을 잊고살아야 함을 강조한다. 그렇다. 애착이나 집착을 사랑으로 착각하는 의부증, 의처증이 얼마나 많은가. 꼭 남녀관계만이 아니라 세상사 모든 일이 지나친 욕심이나 애착 그놈의 집착 때문에 그르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갑자기 나무에서 저절로 떨어진 살구를 먹고 싶은 생각에 군침이 돈다. 시인은 나무에서 떨어진 살구를 시로 승화시켜 삶의 지혜를 말해주는데, 그 시를 읽다가 먹을 것을 생각하는 나는 참 속물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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