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정수자의 <금강송>

복사골이선생 2018. 11. 28. 00:07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169)






금강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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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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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말이나 수사 따위 버린 지 오래인 듯

뼛속까지 곧게 섰는 서슬 푸른 직립들

하늘의 깊이를 잴 뿐 곁을 두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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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발 같은 것은 너럭바위나 받는 것

눈꽃 그 가벼움의 무거움을 안 뒤부터

설봉의 흰 이마들과 오직 깊게 마주설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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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락 이후 충천하는 개골의 결기 같은

팔을 다 잘라낸 후 건져 올린 골법 같은

붉은 저! 금강 직필들! 허공이 움찔 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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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는 구과목 소나무과의 식물로 전국 산야에서 흔하게 자라는 상록의 침엽교목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나무이다. 소나무의 으뜸을 뜻하여 나무 중에 으뜸인 나무라는 뜻인데, 때로는 나무줄기가 붉어 적송(赤松)’, 주로 내륙 지방에서 자란다고 육송(陸松)’, 여인의 자태처럼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고 여송(女松)’ 혹은 특별히 금강송이라 부르기도 한다. 특히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소나무가 나무 중에 가장 많은 40종목에 이를 정도로 한국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 매화, 대나무와 함께 세한삼우(歲寒三友)라 일컫기도 한다.

정수자의 시 <금강송>은 이 소나무를 예찬하는, 전체 3연으로 된 연시조이다. 매 연이 소나무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다. 소나무는 자라며 군말이나 수사 따위 버린 지 오래란다. 나아가 하늘의 깊이를 잴 뿐 곁을 두지 않는단다. 오로지 위로만 향하여 뼛속까지 곧게자란다. 이를 시인은 서슬 푸른 직립들이라 칭한다. 그러니 잡념을 가질 여유가 없고 옆을 돌아볼 틈이 없다.


겨울에 눈이 내리면 나뭇가지에 눈이 쌓인다. 그러나 그런 눈 꽃다발 같은 것은 너럭바위나 받는 것이지 소나무가 받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소나무는 눈꽃 그 가벼움의 무거움을 안 뒤부터는 가지들은 부러지고 오직 위로만 향하여 설봉의 흰 이마들과 오직 깊게 마주설 뿐이다. 이 정도면 하늘을 향해 위로만 쭉쭉 뻗어 오르는 소나무의 특징을 잘 알 수 있으리라.

시인은 3연에서 이를 다시 강조한다. 잎이 떨어진 후에 오히려 더 하늘 높이 오르는 개골의 결기 같다고 한다. 비록 눈과 바람에 가지들은 부러지지만 그런 연후에 더욱 곧게 자랄 수 있었던 소나무. 이를 시인은 붉은 저! 금강 직필들!’이라 한다. 그러니 허공이 움찔 솟는다고 하는 것이다. 시 속에 지조나 절개와 같은 단어가 없다. 그럼에도 시를 읽다 보면 하늘을 향한 직립, 직필을 통해 지조나 절개 그 이상의 곧음을 느낄 수 있다.

뼛속까지 곧게 섰는 서슬 푸른 직립’, ‘설봉의 흰 이마들과 오직 깊게 마주설 뿐’, ‘붉은 저! 금강 직필들!’은 소나무의 곧은 모습을 여실하게 드러낸다. 그렇게 되기까지 소나무는 자라며 결코 옆을 돌아보지 않았을 것이다. 오로지 한 길,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는 일 뿐이었으리라. 그렇게 자랐기에 산 정상과 마주볼 수 있고, 하늘의 깊이를 잴 수 있지 않았겠는가.

시인이 어느 산에서 본 소나무를 보고 읊었는지는 모르나 시만 읽어도 소나무에서 개골의 결기가 느껴진다. 그것도 그냥 소나무라 칭하지 않고 금강송(金剛松)’이라 했으니 더 느낌이 크게 다가온다. 게다가 허공이 움찔할 정도의 금강 직필이라니. 할 말은 하는, 그것도 곧은 말을 한다니 언론이나 충신의 본분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정수자는 여성 시조시인이다. 그런데 소나무 아니 금강송을 통해 어쩌면 이렇게 강한 남성성을 표출해 낼까. 그런 것을 보면 시인의 상상력은 남녀 성별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리라. 시를 읽다가 나도 그만 움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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