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곽재구의 <도라지꽃>

복사골이선생 2018. 11. 24. 15:09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166)






도라지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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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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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마루 위

할머니와 손녀

감자 세알이 화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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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에는 두해 전 세상 떠난

할아버지의 붓글씨가 누렇게 바래 붙어 있는데

山山水水無說盡이라 쓰인

문자의 뜻을 아는 이는 이 집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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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감자 껍질을 벗겨

소금 두 알을 붙인 뒤

손녀의 입에 넣어주는 모습을

마당귀 도라지꽃들이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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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지꽃은 깊은 뿌리를 지니고 있다

할머니가 시집온 그날도 그 자리에 머물러 꽃등을 흔들었다

도라지꽃에서는 구들장 위 한데 모여 잠을 자는 식구들의 꿈 냄새가 난다

눈보라가 날리고 얼어붙은 물이 쩡쩡 장독을 깨뜨리는 무서운 겨울밤을

할머니는 아가야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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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지꽃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대청 위 할머니도 손녀도 감자를 담던 사기그릇도 보이지 않는다

주련의 글귀도 사라지고

먼지가 뿌연 마루 위를

도라지꽃들이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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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에 빈집이 늘어난다고 한다. 젊은이들이 농촌을 떠나고 집을 지키던 노인들이 죽고 나면 그 집에 자식들이 들어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냥 빈집인 채로 버려진다고들 한다. 새 주인이 들어오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산다고 나서는 사람도 없으니 그냥 빈집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비단 어느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농촌의 전반적인 문제라고 하니 걱정이 된다.

곽재구의 시 <도라지꽃>은 이런 빈집을 지키고 있는 도라지꽃을 그리고 있다. 많이들 알고 있듯이 도라지는 우리나라 산과 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물이다. 뿌리는 식용과 약용으로 널리 쓰이는데 78월에 흰색과 보라색으로 꽃이 피기에 근래에는 관상용으로 심기도 한단다. 꽃이 지고 열매를 맺은 후 여기서 씨앗이 나와 주변은 물론 새들을 통해 멀리까지 퍼진다고 한다.


시를 보자. 시 속에는 어느 시골집의 몇 개 풍경이 그려져 있다. 첫머리에 대청마루 위’, ‘할머니와 손녀그리고 감자 세알이 제시되는데, 할머니와 손녀만이 사는 집, 감자 세 알로 그려지는 소박한 살림살이이다. 그 집 기둥에는 두해 전 세상 떠난 / 할아버지山山水水無說盡라 쓴 붓글씨가 누렇게 바래 붙어 있다는데 누렇게 바랬다는 것은 오래 전에 써서 걸어놓았다는 뜻이리라. 게다가 그 집에는 그 글귀의 뜻을 아는 사람도 없다.


첫 연에서 제시된 감자의 껍질을 벗겨 할머니가 손녀의 입에 넣어준다. 얼마 되지 않는 감자 세 알, 그 중 두 알을 손녀에게 먹이는 할머니, 그 모습을 마당귀 도라지꽃들이 보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도라지꽃의 내력이 소개된다. ‘할머니가 시집온 그날도도라지꽃이 피었고 구들장 위 한데 모여 잠을 자는 식구들이 있을 때에도 도라지꽃이 피어 있었다. 그리고 눈보라가 날리고 얼어붙은 물이 쩡쩡 장독을 깨뜨리는 무서운 겨울밤에 할머니는 손주들에게 아가야하며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었을 것이다. 참 사랑스런 풍경, 행복한 모습이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아들딸 출가하고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할머니와 손녀만 남았다. 그러나 도라지꽃들이 바람에 흔들리던 날 할머니는 돌아가시고 손녀도 부모에게 돌아갔다. 그러니 대청 위 할머니도 손녀도 감자를 담던 사기그릇도 보이지 않는다. 빈집이 된 것이다. ‘山山水水無說盡이라 쓰였던 주련의 글귀는 어쩌면 아들딸 누군가가 아버지의 유품이라고 가져갔을 것이다. 그러나 비록 덩그라니 비어 있는 집이지만 마당에 핀 꽃들은 여전히 피어난다. 바로 먼지가 뿌연 마루 위를 / 도라지꽃들이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농촌의 빈집 문제 - 시인은 도라지꽃이 되어 서글픈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때는 부모님과 아들딸이 모여 재재거리며 웃음꽃을 피웠을 집이다. 그러나 아들딸은 출가하여 도시로 나가 독립했으며 부모님은 돌아가셨다. 아들딸 누구도 농촌에 와서 그 집에 살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니 집은 비어 있게 되고 인적이 없는 마당가에 꽃들만 피어난다. 요즘 우리 농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빈집 풍경이다.


맞다. 할아버지가 쓰셨다는 주련 글귀 - ‘山山水水無說盡(산산수수무설진)’은 어쩌면 그 집의 깊은 뿌리를 지닌 채 남아 있는 도라지꽃의 마음이리라.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지 않은가. 다만 도라지는 말이 없을 뿐이리라. 그렇게나마 빈집을 지키고 있는 도라지꽃이 참 애처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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