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박미라의 <작살나무>

복사골이선생 2018. 12. 30. 17:38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192)



작살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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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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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표를 달고 있는 나무들 앞을 지나다가

가슴에 묻어둔 피붙이를 만난 듯 몇 번이고 이름 외워본다

작살나무, 작살나무, 라니!

이름까지 작살이라 못 박고 떨고 계신

그대는 누구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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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이란 저렇게

만나기만 해봐라, 이빨 으드득 깨무는 일이다

너를 박살내기 전에는 죽을 수도 없다고

이승의 한평생을 꼿꼿이 서서 버티는 일이다

닿을 수 없는 거리인 줄 알면서도

끝없이 떠도느라 푸르게 질린 너의 등짝에

온몸으로 콱! 꽂히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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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기다립니다

온몸이 작살이 되었으나

그리움 쪽으로는 한 발짝도 떼지 못하는 나무가 있다

피를 찍어 피워 올린 이파리들 다 지고

청보라빛 열매 몇 주저흔처럼 남았다

표고 1300m의 계곡을 버리고 내려온 국립공원 입구에서

다시 한 생이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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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바다 어딘가를 끝없이 떠도는 고래 한 마리

그가 작살을 피할 거라는 생각은 편견이다

작살이 꽂히는 순간

평생토록 빚어온 거대한 꽃 한 송이 활짝 피워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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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살나무는 통화식물목 마편초과의 낙엽관목으로 낮은 산에서 높은 산까지 100~1,200m 고지의 비탈이나 산 가장자리, 들판에 주로 서식한다. 높이 24m 정도까지 자라는데 가지가 원줄기를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두 개씩 정확히 마주 보고 갈라져 있어 작살 모양으로 보인다 하여 작살나무라 부른단다. 꽃은 8월에 피고 연한 자줏빛이며 열매는 핵과로 둥글고 지름 45mm이며 10월에 자주색으로 익는다.

박미라의 시 <작살나무>에서는 이 나무를 통해 그리움 혹은 증오의 치열함을 보여준다. 시 속 화자는 어느 국립공원의 표고 1300m의 계곡에까지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국립공원 입구에서처음으로 작살나무를 마주한다. 그런데 작살나무를 잘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니 이름표를 달고 있는 나무들 앞을 지나다가 / 가슴에 묻어둔 피붙이를 만난 듯 몇 번이고 이름 외워본다지 않는가. ‘가슴에 묻어둔 피붙이를 만난 듯하다니 동병상련의 마음이었을 테고 작살나무, 작살나무, 라니!’하고 놀라움을 표한다. 어쩌면 화자는 누군가의 등 뒤에 작살이라도 꽂고 싶은 심정이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름까지 작살이라 못 박고 떨고 계신 / 그대는 누구신가?’라 묻는 것을 보면 자신은 그런 마음을 숨기고 살았지만 당당하게 작살이라고 자신을 내 보이며 증오 혹은 그리움에 떨고있는 나무에 놀란 것이리라.


여기서 화자는 생각한다. ‘기다림이란 저렇게 / 만나기만 해봐라, 이빨 으드득 깨무는 일이다고 단정한다. 그 기다림이 증오라면 너를 박살내기 전에는 죽을 수도 없다고 / 이승의 한평생을 꼿꼿이 서서 버티는 일일 것이요, ‘닿을 수 없는 거리인 줄 알면서도 / 끝없이 떠도느라 푸르게 질린 너의 등짝에 / 온몸으로 콱! 꽂히려는 것이지 않겠는가.

그러나 만일 당신을 기다립니다를 증오가 아닌 그리움으로 해석하면 누군가의 마음에 자신의 사랑을 꽂고 싶어 온몸이 작살이 되었으나 / 그리움 쪽으로는 한 발짝도 떼지 못하는 나무가되어버려 상대에게 가지는 못하고 기다릴 수밖에 없는 한이리라. 그런 그리움이기에 피를 찍어 피워 올린 이파리들 다 지고 / 청보라빛 열매 몇 주저흔처럼 남았단다. 자줏빛 혹은 진한 보랏빛이어야 할 열매를 청보라빛이라 한 것으로 보아 시인은 열매가 완전히 익기 전에 작살나무를 보았던 모양이다. 게다가 주저흔이란다. 주저흔(躊躇痕)이라니. 자해로 생긴 손상이지 않은가. 얼마나 사무치면 자해를 하면서까지 그리움을 달랜단 말인가. 그런 기다림 속에 꽃이 지고 열매를 맺었으니 작살나무의 다시 한 생이 저무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증오 혹은 그리움의 대상은 누구일까. 시 속에는 고래 한 마리라 했지만 이는 작살이란 단어와 어울리는 물체로 가져온 것일 뿐 꼭 고래라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먼 바다 어딘가를 끝없이 떠도는 고래 한 마리 / 그가 작살을 피할 거라는 생각은 편견이라고 화자는 단정한다. 왜 그럴까. 언젠가는 그의 등에 작살을 꽂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작살이 꽂히는 순간 / 평생토록 빚어온 거대한 꽃 한 송이 활짝 피워 올리지 않겠는가.


국립공원에 갔다가 작살나무란 이름표를 달고 있는 나무를 보며 놀란 화자. 어쩌면 누군가를 증오하는 마음 혹은 작살로 꽂아서라도 얻고 싶은 사랑을 감추고 있던 화자이니 당당하게 작살나무란 이름표를 달고 있는 게 놀라웠으리라. 나무이기에 이동할 수 없으니 상대를 찾아 작살을 꽂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그가 오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작살나무. 그런 기다림이 한이 되어 꽃이 피고 자줏빛 주저흔으로 열매를 남기며 한 생이 저물지만 언젠가는 상대에게 작살을 꽂을 것이요 그때에는 거대한 꽃 한 송이 활짝 피우겠단다.

그런데 작살을 꽂고 싶은 화자의 마음은 증오일까 아니면 사랑일까. 나는 왠지 사랑으로 읽힌다. 상대의 마음을 갖지 못하며 혼자만 바라본 사랑, 그 사랑 끝에 그의 마음에 작살을 꽂아서라도 갖고 싶은 상대를 향한 마음이 아닐까. 그에게 작살을 꽃는 날 꽃 한 송이 활짝 피우겠다니 증오보다는 사랑, 그리움이리라. 물론 사랑이나 그리움을 작살에 비유한 것은 좀 지나친 감이 있다. 그러나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눈이 내린다지 않는가. 사랑하는 마음이 지나쳐 한이 되고나면 증오로 변한다. 그러니 작살이라도 꽂고 싶은 마음이 생겼을 것이요 결국 증오란 열렬한 사랑의 다른 이름이리라.

공원 입구 야외 식물원에 이름표를 달고 있는 작살나무가 먼 바다 속을 헤엄치는 고래에게 작살을 겨누고 있다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누군가를 지극히 그리워하며 사랑이 증오로까지 나아간 사무치는 한이 있기에 작살나무를 그렇게 본 것이 아니겠는가. 내 사랑도 얻기 위해서는 작살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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