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한소운의 <망초>

복사골이선생 2019. 1. 2. 03:04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194)



망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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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소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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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 양옆으로 나일론 줄을 치고

꽃무늬가 있는 천으로 듬성듬성 주름을 잡아 매달고서

커튼이라고 좋아라 했던 아늑한 방, 자취방

창호지 문짝의 고리 하나를 굳게 믿었던 그 밤

누가 방문 앞 신발만 가만히 확인하고 돌아간 사람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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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들기 전에 지는 꽃도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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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초는 국화목 국화과 망초속의 두해살이풀로 전국의 들이나 길가에 자란다. 구한말 서구로부터 유리그릇이 수입되면서 그릇이 깨지지 않게 하려고 사이사이에 풀묶음을 넣었는데 그때 따라 들어와 퍼진 것이다. 아메리카 원산의 귀화식물이지만 지금은 전 세계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이 꽃이 들어와 퍼지면서 나라가 망했다고 하여 망초(亡草 - 나라를 망하게 한 풀)라 불렀다고 한다.

한소운의 시 <망초>에서 이 꽃은 자취방 방문 앞에 피어 있는 꽃이다. 시 속 화자가 자취방을 꾸미고 있다. 그 방에는 커튼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러니 방문 양옆으로 나일론 줄을 치고 / 꽃무늬가 있는 천으로 듬성듬성 주름을 잡아 매달고서 / 커튼이라고 좋아라한다. ‘꽃무늬가 있는 천을 나일론 줄에 매달아 커는 대용으로 쓰면서도 그 방을 아늑한 방, 자취방이라 하는 소녀적 감성이 참 고와 보인다.


그렇게 자취방을 꾸미고는 창호지 문짝의 고리를 걸고는 밤을 보낸다. 문짝의 고리는 안에서 거는 것이니 누군가 밖에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장치이다. 문 자체가 방 안과 밖을 차단하는 것인데 거기에 고리까지 걸었으니 완벽한 차단이리라. 그렇게 고리를 걸었으니 침입할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그 밤의 일이다. 아침에 일어나 방문을 열고 밖을 보니 누군가 왔다 간 느낌이 든다. 누구일까. 어쩌면 시 속 화자를 흠모한 사람일 수도 있고 아니면 좀도둑일 수도 있다. 분명 누가 방문 앞 신발만 가만히 확인하고 돌아간 사람 있었단다.

그러다가 문득 눈에 뜨인, 방문 앞 뜨락에 핀 꽃, 바로 망초이리라. 화자는 그 꽃을 보며 철들기 전에 지는 꽃도 있지라 한다. ‘철들기 전에 지는 꽃은 망초이기도 하지만 화자 자신 혹은 밤에 화자의 방문 앞에 와 신발만 확인하고 간 사람일 수도 있다. 하긴 꽃무늬 천으로 커튼을 해 두었으니 방 안은 화자에게 아늑한 공간이었는지 모르나 그 꽃무늬가 방문 비친 모습과 색깔을 밖에서 보면 호기심이 나지 않았을까. 그러니 어떤 총각이 화자를 생각하며 슬며시 다녀갔을 수도 있을 것이다. 차마 문을 두드려 자신을 알리지는 못하고 기껏 신발 크기와 모양만 확인하고 가버린 사람 - 그래, 사랑은 그렇게 시작되는 것이리라.


망초는 너무 흔하다 보니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기껏해야 화자처럼 누군가 밤에 다녀간 것 같은 느낌으로 그 흔적을 찾으려 주위를 자세히 살필 때에야 눈에 뜨인다. ‘철들기 전에 지는 꽃은 바로 화자의 입장에서 본 망초이고 어쩌면 누군가의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던 화자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다. 혹은 누군가 다녀간 것이 아니라 망초가 뜨락에서 방문에 비친 꽃무늬 천을 보고 있었다고, 아침에서야 눈에 뜨인 망초를 보며 화자 입장에서 역으로 생각한 것인지도 모른다.

망초’ - 어느 꽃인들 아름답지 않겠는가만 이 하얀 망초도 아름답다. 게다가 줄기를 타고 올라와 무더기로 핀다. 그 아름다움만큼 뭔가 예쁜 이름이 있을 터인데, 본의 아니게 우리나라에 들어온 후에 나라가 망했다고 망초(亡草)가 되어버린 꽃. 시의 내용을 떠나 망초를 볼 때마다 그 이름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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