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문숙의 <홍시>

복사골이선생 2019. 1. 3. 01:13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196)



홍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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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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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사랑하는 일이

떫은맛을 버려야 하는 일이네

물렁해져 중심마저 버려야 하는 일이네

긴 시간 네 그림자에 갇혀

어둠을 견뎌야만 하는 일이네

모든 감각을 닫고 먹먹해져야 하는 일이네

겉은 두고 속만 허물어야 하는 일이네

붉은 울음을 안으로 쟁이는 일이네

사랑이란

일생 심지도 없이 살아야 하는 일이네

결국 네 허기진 속을 나로 채우는 일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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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적으로 단감을 제외하고는 감나무에서 직접 딴 감은 떫은맛이 강하다. 달콤한 맛이 날 때까지 나무에 그대로 두면 대개 떨어지고 만다. 그래서 감을 따서 한동안 놔두거나 유통과정에서 숙성이 되어 떫은맛이 사라지며 단맛이 나게 된다. 이 때문에 단감을 제외한 일반적인 감은 대부분의 경우 홍시로 만들어 먹는다. 전통적으로 금방 딴 떫은 땡감을 며칠 동안 햇볕을 쪼여주거나 항아리에 넣어 두면 떫은맛이 제거되고 말랑하게 무르익은 맛있는 감이 되는데 이를 붉은 빛을 강조하여 홍시혹은 물렁물렁한 질감을 강조하여 연시라 부른다.

문숙의 시 <홍시>는 감이 홍시로 변하는 과정을 사랑에 견준다. 시 속에 를 사랑하는 님 혹은 감을 먹으려는 사람 어느 것으로 읽어도 뜻은 통한다. 시 속 화자는 나중에 홍시가 되는 땡감이다. 화자의 말을 따라가 보자. ‘너를 사랑하는 일이 / 떫은맛을 버려야 하는 일이란다. 여기서 사랑하는 일은 사랑 받는 일이다. 즉 감을 먹고자 하는 사람이 감을 먹어야 할 텐데 떫은맛 때문에 먹지를 못한다. 그러니 당연히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떫은맛을 버려야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물렁해져 중심마저 버려야 하는 일이. 딱딱한 감은 먹기 힘들다. 더 떫기 때문이다. 그러니 단단함을 버리고 물렁해져야만 한다. 그러면 단맛이 더 강해진다.

그런데 실은 감이 그렇게 되는 일은 간단하다. 나무에서 따서 햇빛을 많이 쪼인다거나 아니면 항아리에 담아 숙성을 시키면 된다. 가정에서 숙성을 시킬 때에는 사과를 함께 넣어두면 좋다. 사과에서 나오는 에틸렌 가스가 식물의 노화와 부패를 촉진시켜 더 빨리 홍시로 만들어버린다. 땡감에서 홍시로 변하는 과정을 화자는 긴 시간 네 그림자에 갇혀 / 어둠을 견뎌야만 하는 일로 본다. 그렇게 견디면 땡감의 모든 감각을 닫고 먹먹해진다는데 그 과정을 거쳐야 겉은 두고 속만 허물어지며 겉과 속의 붉은 색이 더 진해진다. 이를 붉은 울음을 안으로 쟁이는 일이라 한다.

여기서 화자는 홍시를 사랑에 견준다. 사랑이란 / 일생 심지도 없이 살아야 하는 일이라 한다. 심지도 없이 사는 일, 즉 사랑을 하려면 자신을 버려야 하리라. 자신을 버리지 않고 어찌 사랑하는 사람을 받아들이겠는가. 그렇게 자신을 버린다면 결국 네 허기진 속을 나로 채우지 않겠는가. 즉 홍시로 숙성이 되었을 때 먹는다는 뜻이겠지만, 이는 자신을 버렸을 때에야 님이 자신을 다 받아들여 품에 안는다는 뜻도 된다.


감이 떫어 홍시로 만들어 먹는 우리들의 마음을 사랑에 견준 시인. 떫은맛을 버리고 단 맛으로, 단단함을 버리고 물렁함으로 그리고 속을 허물고 붉은 빛으로 숙성될 때 감은 홍시가 되는 것이요, 사람들은 잘 먹게 되리라.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랑은 자신을 온전히 버렸을 때에서야 이룰 수 있다. 홍시와 사랑의 비유 - 참 멋지지 않은가.


, 어쩌면 나는 나를 온전히 버리지 못해 사랑을 얻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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