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김영란의 <나팔꽃>

복사골이선생 2019. 1. 3. 20:39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198)




나팔꽃

 

김영란

 

은촛대 생일케익

알록달록 촛불을 켜는

어쩌면

내 영혼의

눈이 부신 팡파르


꽃 초롱

하늘계단에

송이

송이

 

 

나팔꽃은 메꽃과 나팔꽃속의 한해살이 덩굴성 초본으로 길가나 빈터에 서식하며 주로 관상용으로 심는다. 흔히 미국나팔꽃이나 둥근잎나팔꽃혹은 메꽃과 혼동을 하기 쉬운데, 우선 잎 모양이 다르고 한낮에 피어 있다면 그것은 나팔꽃이 아니다. 나팔꽃은 해가 중천에 뜬 한낮에는 입을 다물어버리기 때문이다. 꽃 모양이 나팔처럼 생겼다 하여 그렇게 부른다는데, 7~8월에 자주색, 흰색, 붉은색 등 다양한 색의 꽃을 피운다.


김영란의 시조 <나팔꽃>은 이 꽃을 생일케익에 꽂힌 촛불로 그려낸다. 독자들도 금방 알아챌 수 있겠지만 시행배열에 조형미까지 갖추고 있다. 시 속 화자가 생일을 맞아 생일케익을 받고 축하 잔치를 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케익이 여러 단으로 되어 있고 하얀 초코렛과 크림이 덮여 있어 마치 은촛대 같다. 케익 각 단마다 알록달록 촛불을 켜고 축하객이 함께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른다. 화자에게는 어쩌면 / 내 영혼의 / 눈이 부신 팡파르이리라.


그런데 화자의 눈에 케익에 꽂힌 촛불들이 꽃 초롱으로 보인다. 초롱 - 본디 촛불이 바람에 꺼지지 않도록 겉에 천 따위를 씌운 등이 아닌가. 마치 케익에 꽂혀 있는 촛불이 꺼지지 말라고 꽃으로 감싸 놓은 것처럼 보인다. 이는 바로 나팔꽃으로 그려진다. 나팔꽃은 나팔 모양이지만 화자의 눈에는 꽃초롱처럼 촛불이 꺼지지 않게 둘러댄 등이다. 게다가 덩굴을 따라 오르며 층층이 꽃을 피우는 나팔꽃처럼 1, 23단에 꽂힌 촛불들이 마치 하늘 계단으로 송이송이 오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시조의 운율을 잘 살려내면서 시각적 효과까지 거두는 것은 앞에서도 말했지만 시행배열에 따른 조형미 때문이다. 현대시조이지만 초장과 중장을 1 연으로 종장을 2연으로 구성했는데, 종장 마지막 구는 하늘계단에 / 송이송이 오르는정도면 현대시조의 배열로 충분할 것이지만 시인은 이를 하늘계단에 / 송이 / 송이 / / / 으로 배열했다. 단순히 글자 수만 맞추는 것이 아니라 활자화되었을 때 시각적으로도 마치 계단을 오르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 놓았다. 그러니 나팔꽃이 덩굴을 따라 오르는 것처럼 3단 케익 각 단에 꽂힌 촛불들이 마치 계단처럼 올라가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나팔꽃과 케익 각 단의 촛불이 하늘계단을 오르는 것으로 인식하는 시인의 상상력. 거기에 행갈이를 통해 한 줄로 내리 쓴 하늘계단에 송이송이 오르는이 시인의 조형감각까지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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