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영의 <양귀비꽃>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95) 양귀비꽃 — 오세영 다가서면 관능이고 물러서면 슬픔이다. 아름다움은 적당한 거리에만 있는 것. 너무 가까워도 너무 멀어도 안 된다. 다가서면 눈멀고 물러서면 어두운 사랑처럼 활활 타오르는 꽃. 아름다움은 관능과 슬픔이 태워 올리는 빛이다. 양..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2018.08.21
김진경의 <목련>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94) 목련 — 김진경 모래 구릉처럼 메마르고 묵묵한 줄기의 어디쯤에서 아무래도 지금쯤 전쟁이 한창인 모양이다. 남부여대(男負女戴) 살아남아야 한다는 목숨의 강렬함이 새 새끼 같은 자식들을 거느리고 남루를 끌며 메마른 가지에서 가지로 또 메마른 ..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2018.08.21
김명기의 <쑥갓꽃>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93) 쑥갓꽃 — 김명기 해 걸음 느린 저녁 누군가 화단처럼 만든 텃밭에 노란 꽃 피었다 눈 익은 푸성귀에 저렇게 예쁜 꽃이라니 꽃피우기 전 다 잘라먹어 언제 저것의 꽃을 본 적 있어야지 텃밭 주인 맘이 좋거나 혹은 게으르거나 어쨌든 다행이다 싶어 밭..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2018.08.21
박수서의 <감나무>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92) 감나무 — 박수서 감은 익지 않았는데 감잎은 익어버렸다 다행이다 나는 아직 덜 익었다 세상 곁에서 어떻게 익어갈지 감나무에게 묻는 날이다 감이 익는 과정을 보면 참 묘하다. 하긴 자연의 변화는 모든 것이 오묘하지만, 감은 다른 열매와는 조금 다..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2018.08.21
임보의 <매화(梅花)>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91) 梅花 — 임보 지난 이른 봄 동대문 근처에서 어정거리다 한 시골 아낙이 매화 몇 그루 안고 졸고 있기에 제법 밑둥 굵은 놈 하나 골라 데려와 아내 눈치 보며 안방 머리맡에 앉혀 놓고 지켰는데 그 놈이 마른 가지 끝에 봄을 몰아 눈을 틔우는데 처음엔 ..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2018.08.21
마종기의 <박꽃>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90) 박꽃 — 마종기 그날 밤은 보름달이었다. 건넛집 지붕에는 흰 박꽃이 수없이 펼쳐져 피어 있었다. 한밤의 달빛이 푸른 아우라로 박꽃의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 박꽃이 저렇게 아름답구나. - 네. 아버지 방 툇마루에 앉아서 나눈 한마디, 얼마나 또 오래..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2018.08.21
임영조의 <산나리꽃>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89) 산나리꽃 — 임영조 지난 사월 초파일 산사(山寺)에 갔다가 해탈교를 건너며 나는 문득 해탈하고 싶어서 함께 간 여자를 버리고 왔다 그런데 왠지 자꾸만 그 여자가 가엾은 생각이 들어 잠시 돌아다보니 그 여자는 어느새 얼굴에 주근깨 핀 산나리가 되..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2018.08.21
문태준의 <탱자나무 흰 꽃>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88) 탱자나무 흰 꽃 — 문태준 들마루 양지녘에 오늘 나앉았다가 문득, 탱자나무 가시 사이 흰 꽃 핀 걸 알았다 응달에, 부엉이의 눈 같기만 한 탱자나무 흰 꽃송이 꽃이 슬퍼 보일 때가 있다 호남 지역을 여행할 때 한적한 마을 울타리에서 탱자나무를 처음..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2018.08.21
김용락의 <호박>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87) 호박 — 김용락 아침 출근길 아파트단지 담장에 호박 넝쿨이 맹렬한 기세로 앞을 향해 내닫고 있다 고양이 수염 같은 새순도 기세등등하다 처서 백로 다 지난 지 언제인데 속으로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다 한때는 저 호박 넝쿨에 대고도 무릎 꿇고 살지..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2018.08.21
이용헌의 <나팔꽃>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86) 나팔꽃 — 이용헌 나팔꽃 줄기를 따라 내려가면 거기, 아무도 몰래 지어놓은 지하방송국이 있다. 세상 밖 전하고픈 깜깜한 소리들을 향기와 빛깔로 바꾸어 송출하는 벙어리지하방송국이 있다. ‘나팔꽃’은 메꽃과 나팔꽃속의 한해살이 덩굴성 초본으..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2018.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