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화의 <동백꽃>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175) 동백꽃 ― 윤진화 오필리어가 간다 육자배기 가락 시끄러운 막걸리 집에서 젊은 시인과 잔 치던 목 쉰 년이 간다 칼춤 추던 사내에게 두들겨 맞은 뺨 벌그레하던 년이 간다 멍든 젖가슴 부끄러운지 모르고 자꾸 열어 보여주던 그 년이 간다 칼등에 날세..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2018.12.09
박제영의 <선인장>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174) 선인장 ― 박제영 아내도 한 때 넓은 잎 무성한 활엽식물이었다 물오른 줄기로 잎새마다 형형색색 꽃 피었던 활엽식물이었다 고비가 몽골고원에만 있는 사막은 아니어서 아내에게는 남편이 고비고 자식들이 고비여서 더 많은 눈물이 필요했던 아내는 ..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2018.12.09
박용래의 <구절초>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173) 구절초 ― 박용래 누이야 가을이 오는 길목 구절초 매디매디 나부끼는 사랑아 내 고장 부소산 기슭에 지천으로 피는 사랑아 뿌리를 대려서 약으로도 먹던 기억 여학생이 부르면 마아가렛 여름 모자 차양이 숨었는 꽃 단추 구멍에 달아도 머리핀 대신 ..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2018.12.08
이소리의 <접시꽃>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172) 접시꽃 ― 이소리 자야, 니는 오늘도 들에 나가 돌아오지 않는 에미애비 기다리며 배 아프다 입 고프다 마른 침 꾸울꺽 삼키고 있느냐 숙아, 니는 오늘도 날마다 불러오는 아랫배 쓰다듬다가 쇠 받으러 도시로 떠난 그 사내 온 몸에 땀띠로 송송 돋아나..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2018.12.07
허수경의 <라일락>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171) 라일락 ― 허수경 라일락 어떡하지, 이 봄을 아리게 살아버리려면? 신나게 웃는 거야, 라일락 내 생애의 봄날 다정의 얼굴로 날 속인 모든 바람을 향해 신나게 웃으면서 몰락하는 거야 스크랩북 안에 든 오래된 사진이 정말 죽어버리는 것에 대하여 웃..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2018.11.30
허수경의 <오이>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170) 오이 ― 허수경 어라, 아직 여름길은 제대로 나지 않았는데 오이넝쿨의 손은 하늘을 더듬더라 그때 노란 꽃은 후두둑 피기 시작하더라 아직 여름길은 나지 않았는데 바다로 산책을 나간 새들은 오이 향을 데리고 저녁이 닫히기 전 마을로 돌아오더라 ..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2018.11.29
정수자의 <금강송>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169) 금강송 ― 정수자 군말이나 수사 따위 버린 지 오래인 듯 뼛속까지 곧게 섰는 서슬 푸른 직립들 하늘의 깊이를 잴 뿐 곁을 두지 않는다 꽃다발 같은 것은 너럭바위나 받는 것 눈꽃 그 가벼움의 무거움을 안 뒤부터 설봉의 흰 이마들과 오직 깊게 마주설 ..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2018.11.28
정희성의 <백년초>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168) 백년초 — 정희성 소망은 어떤 힘으로 응축하여야 이 신화 같은 노란 빛깔로 피려나? 울혈진 원한은 이쯤에서 밀어 넣자 남루한 살갗 아래 두고두고 묵혔다 외마디 비명은 뿔가시로 뽑아내고 풀어도풀어도 억울한 단 한가지만큼은 제주 물사람 숨비 소..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2018.11.27
서수찬의 <살구나무>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167) 살구나무 ― 서수찬 살구는 나무에서 떨어져 바닥에 굴러다니는 것이 달고 더 맛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무에 붙은 열매는 그만큼 욕심을 붙잡고 있어서 열매에 대한 애착이 심해서 떫고 맛이 없다고 했다 나는 살구나무와 멀리 떨어져 살아서 그걸 몰랐..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2018.11.27
곽재구의 <도라지꽃>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166) 도라지꽃 ― 곽재구 대청마루 위 할머니와 손녀 감자 세알이 화안하다 기둥에는 두해 전 세상 떠난 할아버지의 붓글씨가 누렇게 바래 붙어 있는데 山山水水無說盡이라 쓰인 문자의 뜻을 아는 이는 이 집에 없다 할머니가 감자 껍질을 벗겨 소금 두 알..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2018.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