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이의 <등꽃이 필 때>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165) 등꽃이 필 때 ― 김윤이 목욕탕 안 노파 둘이 서로의 머리에 염색을 해준다 솔이 닳은 약을 묻힐 때 백발이 윤기로 물들어간다 모락모락 머릿속에서 훈김 오르고 굽은 등허리가 뽀얀 유리알처럼 맺힌 물방울 툭툭 떨군다 허옇게 세어가는 등꽃의 성긴 ..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2018.11.24
손택수의 <화살나무>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164) 화살나무 ― 손택수 언뜻 내민 촉들은 바깥을 향해 기세 좋게 뻗어가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제 살을 관통하여, 자신을 명중시키기 위해 일사불란하게 모여들고 있는 가지들 자신의 몸 속에 과녁을 갖고 산다 살아갈수록 중심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가..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2018.11.23
고찬규의 <죽순>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163) 죽순 ― 고찬규 묘지 옆 불쑥불쑥 솟아오른 죽순들 저마다의 사연이야 내사 모르지만 단 하나 분명한 것 그들에게 단단해져야 할 이유가 있다 죽순은 대나무의 땅속줄기에서 돋아난 어리고 연한 싹이지만 성장한 대나무에서 볼 수 있는 특성은 다 갖추..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2018.11.22
김영산의 <봄똥>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162) 봄똥 ― 김영산 어머니 겨우내 떨며 생솔가지 배던 조선낫으로 그늘진 텃밭 지푸라기 쓸고 눈을 털면 힘살 백인 배추싹들 가슴 멍들도록 살아서 너, 견디기 힘든 시절을 뿌리째 끙끙 앓고 있구나 ‘봄동’이란 겨울철 노지에 파종하여 봄에 수확하는 ..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2018.11.22
고영의 <코스모스>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161) 코스모스 ― 고영 억지로 등 떠밀려 엉거주춤 길 나서는 고향집 앞 몇 울 남은 물 빠진 꽃잎마저 다 떼어주고 앙상한 손 흔드는 외줄 꽃대 어여 가, 어여! 무거운 발길 보채면서도 행여 소식 끓을까 어머닌 연신 손을 귀에 대고 전화 받는 시늉을 한다 자..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2018.11.21
고진하의 <문주란>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160) 문주란 ― 고진하 뜨락에 핀 꽃들을 보며 벌건 대낮부터 곡차 한 사발씩 벌컥벌컥 들이켰다. 모두들 벌게진 눈길로 길쭉길쭉한 푸른 잎새들 사이에서 말좆 같은 긴 꽃대를 하늘로 쑥 뽑아 올린 문주란을 감상하고 있는데, 훌떡 머리 벗겨진 중늙은이 거..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2018.11.21
마경덕의 <무꽃 피다>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159) 무꽃 피다 ― 마경덕 비닐봉지를 열어보니, 후다닥 무언가 뛰쳐나간다. 가슴을 치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무꽃이다. 까만 봉지 속이 환하다. 비닐봉지에 담긴 묵은 무 한 개 꽃자루를 달고 있다. 베란다 구석에 뒹굴던 새득새득한 무. 구부정 처진 꽃대에..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2018.11.19
곽재구의 <제비꽃 사설>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158) 제비꽃 사설 ― 곽재구 네 이름이 뭐냐 땅끝 가는 완행버스 길 바랑 걸치고 걷다 풀 언덕에 앉아 물어보면 솜털 보송보송한 자주색 꽃들이 입을 모아 사 랑 부 리 꽃 우리나라 사람들 싸우지 말고 용서하여 맑고 고운 희망 나라 통일 나라 얼른 세우라고..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2018.11.19
고경숙의 <석류>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157) 석류 ― 고경숙 발정기에 들어선 원숭이 떼가 엉덩이를 까고 놀리는 줄 알았다. 빨간 석류, 아니 차도르 쓴 여자의 은밀한 곳처럼 검붉다는 게 정확하겠지 ‘이란産’ 딱지 하나씩 엉덩이에 붙이고 위장한 여전사들 어쩌면 저속엔 투명한 탄환알갱이들..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2018.11.19
이채민의 <파꽃>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156) 파꽃 ― 이채민 누구의 가슴에 뜨겁게 안겨본 적 있던가 누구의 머리에 공손히 꽂혀본 적 있던가 한 아름 꽃다발이 되어 뼈가 시리도록 그리운 창가에 닿아본 적 있던가 그림자 길어지는 유월의 풀숲에서 초록의 향기로 날아본 적 없지만 허리가 꺾이..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2018.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