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해의 <능소화>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195) 능소화 ― 문성해 담장이건 죽은 나무건 가리지 않고 머리를 올리고야 만다 목 아래가 다 잘린 돼지 머리도 처음에는 저처럼 힘줄이 너덜거렸을 터 한 번도 아랫도리로 서 본 적 없는 꽃들이 죽은 측백나무에 덩그렇게 머리가 얹혀 웃고 있..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2019.01.02
한소운의 <망초>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194) 망초 ― 한소운 방문 양옆으로 나일론 줄을 치고 꽃무늬가 있는 천으로 듬성듬성 주름을 잡아 매달고서 커튼이라고 좋아라 했던 아늑한 방, 자취방 창호지 문짝의 고리 하나를 굳게 믿었던 그 밤 누가 방문 앞 신발만 가만히 확인하고 돌아..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2019.01.02
이제인의 <홍시>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193) 홍시 ― 이제인 그래도 마음만은 두고 가셨군요 발 헛디딜까 내 가는 길목마다 따라와 가난한 등불 하나 걸어 두셨군요 터질 듯 농익은 저 붉은 기억들 죽어서도 나를 설레게 할 그 목소리 앞으로 남은 날들 이젠 길 잃지 않겠습니다 ‘홍시(..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2018.12.31
박미라의 <작살나무>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192) 작살나무 ― 박미라 이름표를 달고 있는 나무들 앞을 지나다가 가슴에 묻어둔 피붙이를 만난 듯 몇 번이고 이름 외워본다 작살나무, 작살나무, 라니! 이름까지 작살이라 못 박고 떨고 계신 그대는 누구신가? 기다림이란 저렇게 만나기만 해..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2018.12.30
김선굉의 <개망초꽃 여러 억만 송이>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191) 개망초꽃 여러 억만 송이 ― 김선굉 낙동강 긴 언덕을 따라 개망초꽃 여러 억만 송이 푸르게 흐르는 강물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다. 고 작은 꽃들이 키를 다투며 마구 피어나서 바람에 몸 흔들며 푸른 하늘을 받들고 있다. 白衣의 억조창생..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2018.12.30
고영민의 <네트> - 탱자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190) 네트 ― 고영민 탱자나무 울타리에 노란 탁구공들이 박혀 있다 누가 있는 힘껏 스매싱을 날렸는지 네트 한가운데 공은 깊숙이도 박혀 있다 가시에 찔리며 겨루었던 너와의 길고도 힘겨웠던 맞-드라이브 5월의 탱자꽃 시절 아무리 조심해..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2018.12.27
문효치의 <광대나물>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189) 광대나물 ― 문효치 여기에도 줄은 있다 줄을 잘 타야 광대다 두렵지만 올라타야 하고 위험하지만 건너야 한다 한 생애 줄 타는 일 줄이 없으면 매어서라도 타야 한다 이 기둥과 저 기둥 빤히 보이지만 흔들흔들 출렁출렁 몸으로 건너는 줄은..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2018.12.24
우형숙의 <군자란>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188) 군자란 ― 우형숙 겨우내 동안거 풀빛 방에 칩거하다 예절바른 봄 햇살에 물음표로 고개 들다 어느새 꽃대궁 활짝 세상 후리는 저 도도함 군자란(君子蘭)은 백합목 수선화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난(蘭)’이란 이름이 붙어 있지만 난과가 아..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2018.12.19
김선우의 <무꽃>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187) 무꽃 ― 김선우 집 속에 집만한 것이 들어있네 여러 날 비운 집에 돌아와 문을 여는데 이상하다, 누군가 놀다간 흔적 옷장을 열어보고 싱크대를 살펴봐도 흐트러진 건 없는데 마음이 떨려 주저앉아 숨 고르다 보았네 무꽃, 버리기 아까워 사..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2018.12.18
도종환의 <라일락꽃>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186) 라일락꽃 ― 도종환 꽃은 진종일 비에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빗방울 무게도 가누기 힘들어 출렁 허리가 휘는 꽃의 오후 꽃은 하루 종일 비에 젖어도 빛깔은 지워지지 않는다 빗물에 연보라 여린 빛이 창백하게 흘러내릴 듯한 순한 얼굴 ..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2018.12.18